제80화 빨갱이 대장
진화가 빨갱이들에게 붙들려갔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경찰이 나와 노미를 조사했다. 노미는 남편을 찾아달라고 울며 매달렸지만, 경찰들은 붙들려간 것인지 제 발로 간 것인지 알 수 없다며 냉정하게 말했다. 노미는 기가 막혀 더는 뭐라 말대꾸도 하지 못했다.
동네에서는 훈장님이 빨갱이가 되었다며 수군거렸다. 노미는 억울했지만 일일이 대응할 수가 없었다. 한글 공부하러 오던 아이들도 발길을 끊었다. 오로지 나영이만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림 없이 정해진 시간에 와서 노미와 한글 공부를 하고 갔다. 나영이는 이제 막힘없이 한글을 쓰고 읽어서 동생들을 가르치고도 남을 실력이었다. 하지만 반드시 제시간에 와서 한글 소설이나 신문기사 하나를 꼭 읽고 갔다. 나영이는 그렇게 말없이 노미를 챙겨주었다.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윤화와 민화, 석이가 같이 집에 돌아왔다. 도련님들을 보자 노미는 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민화는 노미를 안고 같이 울고, 석이는 기가 막혀 자기 가슴을 쳤다. 윤화는 그저 말없이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한편, 그믐밤, 눈앞도 잘 안 보이는 어두운 산길을 진화는 오로지 그들이 가자는 데로 한없이 끌려갔다. 그렇게 한참을 끌려간 깊은 산속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작은 모닥불을 피우고 여기저기 둘러앉아 있었다. 진화는 머리가 쭈뼛서는 것 같았지만 애써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다들 낯선 이의 등장에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먼저, 대장부터 만나보자.”
하며 성광이는 진화를 대장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사람들 무리 사이를 지나 조금 안쪽에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지어놓은 움막이 보이고 그 앞에 한 사나이가 등을 돌리고 앉아있었다. 그 앞에도 작은 모닥불이 피워져 있었고, 그는 그 모닥불을 앞에 두고 모여앉은 이들과 무언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의 뒷모습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보면 안다고 하더니 아는 사람인가 싶었다. 진화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야 그가 누군지 알았다. 진화는 낮게 한숨을 토했다. 반가움과 기가 막힘이 뒤섞인 안타까운 한숨이었다. 인기척을 느낀 그가 돌아보았다. 복권이었다.
“진화?”
복권이는 놀란 듯 진화의 얼굴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진화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자기를 이곳에 잡아 오라고 시킨 이가, 대장이라는 이가 복권이라는 사실에 만감이 교차했다.
“그래, 니가 내 보고 싶다 했나?”
진화의 목소리에는 어쩔 수 없는 원망이 섞였다. 그러나 복권이는 진화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진화는 곁에 선 성광이를 휙 노려보았다. 성광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장이 진화 보고 싶다 안 했나? 그래가 내 데리고 왔다.”
성광이의 목소리에는 뭔가 날이 서 있었다. 복권이는 잠시 성광이를 노려보더니 진화에게
“앉아라.”
하며 옆자리를 내주었다. 일렁거리는 모닥불에 비친 복권이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머리카락도 수염도 덥수룩하고 오랫동안 씻지조차 못했는지 손등은 얼룩덜룩했다. 진화는 그런 복권이 모습에 참담한 심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니 내 이발해달라고 오라 했나?”
하고 물었다. 복권이는 성광이와 다른 이들에게 자리를 피해달라고 눈짓을 했다. 다른 이들이 자리를 피해주자 복권이는
“아이다. 내 니 데리고 오라 한 적 없다.”
하고 짧게 대답했다.
“니가 여 대장이가?”
하고 진화는 기가 막힌 목소리로 물었다. 복권이는 애써 웃으며
“대장은 무슨.... 그냥 어쩌다 보이... 그래 됐다.”
“니 우야다가....”
그러나 진화는 더 뭐라 물을 수가 없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내도 좋아가 이라고 있는 줄 아나. 처음에는 내도 좋은 세상 만들겠다고 뜻이 높았다. 이라는 게 맞는 기라 생각했다. 그란데....”
복권이는 사그라져가는 모닥불에 작은 나무 장작 하나를 던져 넣었다. 그 바람에 잠시 불꽃이 일며 복권이를 비춘 불빛이 환해졌다. 그는 지치고 슬퍼 보였다.
“사람들은 내를 대장이라 하지만 내는 이미 이게 길이 아닌 걸 안다. 내도 안다. 내 평생 아부지 원망하며 살았다. 아부지랑은 다르게 살겠다고 그래 이를 갈았는데.... 결국 내도 아부지랑 똑같은 실수를 했다.”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복권이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담담했다. 진화는 그저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결과를 위해 방법을 가리지 않은 거.... 내는 결과만 좋으믄 된다 생각했다. 어차피 세상을 바꾸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생각했다. 이런 게 힘인 줄 알았다.”
라고 말하며 그는 나무 장작 하나를 더 불 속에 넣었다. 나무가 타다닥 하며 아픈 소리를 내었다. 일렁이는 불꽃을 받아 더 일렁이는 눈빛으로 복권이 진화를 바라보았다.
“내 꼴이 우습제? 나도 내가 우습다. 하지만 돌아갈 방법도 없다. 내 니랑 친한 거를 알고 성광이 형이 자꾸 니를 데려오자 하더라. 내는 안된다 했는데 내 말 안 듣고 니를 붙들어 온기다. 미안하다.”
복권이는 쓸쓸하게 웃었다.
진화는 복권이의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잘라주고 면도도 해주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진화는 이발을 해주었다. 모두 고마워했다.
그렇게 한 달여가 흘렀다. 계절은 10월을 지나 11월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제 곧 추위가 몰려올 것이다. 매일 경찰과 군인들이 빨갱이들을 잡으러 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 온 산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니 숨어있는 사람들을 잡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산세가 워낙 험하고 깊어서 좀처럼 빨갱이들을 잡았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노미는 잡았다는 소식이 오는 것도 무서웠고, 잡지 못했다는 소식도 무서웠다. 온갖 일을 겪어 낸 심장이었다. 그런데도 노미는 덜컥덜컥 심장이 내려앉을 때마다 아득하게 정신이 나가는 듯했다. 그 순간은 아이들 생각도, 도련님들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그 사람 없는 세상을 살아갈 용기가 과연 자기에게 있을까 싶어 앞이 캄캄해질 뿐이었다.
멍하니 정신 줄을 놓아버린 채 마루 끝에 앉아있는 노미를 윤화는 그저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위로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고, 아는 체할 수도 없었다. 그런 노미에게 민화가 다가와 손을 잡아주었다.
“형수님, 너무 걱정하지 마이소. 무소식이 희소식입니더. 아무 일 없을 낍니더. 형은.... 무사히 올낍니더. 그래 믿으시소.”
노미는 민화의 위로가 고마우면서도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이소 하믄 걱정이 안되나? 형수 지금 아무 소리도 안 들릴 끼다. 그래도요, 형수, 민화 말이 맞습니더. 무소식이 희소식입니더. 살 사람은 어쨌든 삽니더. 살아 올끼라 그래 믿어야지 우얍니꺼. 그라고.... 형수는 내도 있고 아 들도 있으이 걱정마이소.”
윤화는 그저 지나가듯 말하고 있었지만 노미는 윤화가 이미 많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윤화는 진화가 돌아오리라 믿고 싶었다. 그러나 만약 그렇지 못하게 된다면 형 대신 노미와 조카들을 지켜주리라 마음먹었다.
그렇게 또 달포가 지난 어느 날, 동네 이장이 노미네 집으로 뛰어왔다.
“윤화야! 장마당에 빨갱이들을 잡아다 놨단다. 산 사람도 있고, 죽은 사람도 있는데.... 죽은 사람이 더 많단다.”
소식을 전하는 이장은 말을 채 잇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우야노~! 경찰서에서.... 홍이 아부지 시체 찾아가라고 연락이 왔다.”
노미는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쓰러지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얼굴이 하얀데 노미는 오히려 담담한 표정이었다. 눈물이 왈칵 터진 민화가 노미의 팔을 잡았다.
“형수님....”
노미는 오히려 민화를 달랬다.
“괘안습니더. 요즘 같은 세상에 과부 된 사람이 내뿐입니꺼?”
노미의 표정은 무서울 정도로 단호했다. 노미는 방에 들어가 외투를 걸치고 나설 채비를 했다.
“내 황돌이 끌고 나올테니 니는 달구지 매달 준비해라.”
하고 윤화도 낮고 차가운 음성으로 민화에게 말했다. 민화는 눈물을 훔치며 달구지 매달 준비를 했다. 민화는 윤화를 도와 황돌이에게 달구지를 맸다. 동네에서 제일 힘센 소였고, 동네에서 제일 튼튼한 달구지였다. 노미는 안방에서 진화가 덮던 이불을 들고 나왔다. 윤화는 이불을 들고 서있는 노미의 모습에 가슴이 쓰렸다. 윤화는 노미가 달구지 뒤에 탈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었다. 노미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윤화가 소고삐를 잡고 나서려는데 민화가 말렸다.
“잠깐만! 내 석이형네 애들 부탁하고 올게. 내도 간다.”
하며 민화가 따라나서려 했다.
“됐다! 니는 집에 있어라. 험한 꼴 볼 거 없다.”
하며 윤화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윤화를 민화가 평소와 달리 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형! 생각이 있나? 큰형 다리를 형수보고 잡게 할끼가? 무거워 몬 든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겨우 삼킨 민화의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며 말하고 있었다. 그런 민화를 역시 핏발이 선 눈으로 윤화가 바라보았다. 윤화는 그렇게 하라며 눈짓을 했다.
민화는 서둘러 석이네 다녀왔고, 석이와 다혜가 뛰어왔다. 펑펑 울며 노미를 끌어안은 다혜를 오히려 노미가 등을 두드리며 위로해주었다. 다혜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석이도 결국 따라나섰다. 다혜 말고는 아무도 울지 않았다. 누구 보다 울어야 할 노미가 말없이 그저 얼어붙은 사람처럼 달구지 위에 타고 있었다. 노미가 끌어안고 있는 이불을 윤화가 휙 빼앗더니 노미 등 뒤로 둘러 주었다.
“춥습니더.”
노미는 잠시 윤화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노미는 이미 넋이 나가 있었다. 윤화는 애써 노미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일행은 달구지를 끌고 장마당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