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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카
작가 : JakeCello
작품등록일 : 202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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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1-06     조회 : 199     추천 : 0     분량 :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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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마르카는 벌써 오랜 여정에 익숙해진 기분이 들었다.

 이번 길은 저번보다 훤칠했다. 스텝평야가 널리 이어졌고, 대장장이 대신 그의 엉덩이를 받쳐주는 조랑말이 힘든 걸음을 대신 해주었다.

 마르카는 말의 보조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누주에서 들고 온 지도를 펼쳤다. 지도에는 누주 근방에서 수도에 이르는 지역만 나타나 있었고, 수도 너머에서 변경까지 나와 있지는 않았다. 조랑말 옆에서 나란히 걷던 병사가 지도를 낚아채더니 이게 무슨 낙서냐며 물었다. 마르카가 그의 손에서 지도를 도로 빼앗아 배낭에 넣었다. 낯선 병사가 궁시렁 거리며 발로 돌멩이를 걷어찼다.

 “부러워서 그런다, 부러워서. 망치꾼 주제에 조랑말씩이나 타고.”

 그 옆을 지나가던 바라크 장군이 조랑말 탄 망치꾼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병사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마르카는 누주에서 출발해 수도에 도착하기까지 겪은 일을 하나씩 들춰보려 했지만 별로 흥이 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작별인사를 나누었던 한 여인만이 살아 있었다.

 어쩌면 마지막, 그래도 어쩌면 첫 번째 작별인사가 될 대화를 공유한, 그날 저녁.

 

 *

 

 카멜라와 마르카가 횃불로 환히 밝힌 대로를 거닐었다. 그들 뒤에 엠피시오와 봉고스-그는 이제 마르카를 전사로서 대우해주었다-가 거리를 두고 천천히 뒤따라왔다.

 로세트의 대로는 에뮤 때문에 막혔던 사더 호수의 물길이 다시 뚫렸고, 당분간 불필요한 싸움에 힘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을 만끽하는 사람들로 번화했다.

 “아버님…… 조정관께서는 어떻게 지내시나요?”

 “아버님이야 워낙 의욕이 넘치시니 염려 안하셔도 돼요. 지휘자께서 콕 집어 아버님을 치하하셔서 더 기세등등하시죠.”

 “마음이 놓이는군요. 그나저나 이번 행군을 위해 조정관께서 저에게 조랑말을 하사하셨습니다. 솔직히 조금 놀랐네요.”

 “익숙해지실 거예요. 아버님 변덕이 심하시거든요.”

 “그렇군요. 그럼 어머님께서는 안녕…….”

 “마르카. 제 가족은 잘 지낸답니다. 최소한 여전히 큰 탈 없이 평안해요. 이변이 없는 한 언제나 풍족하게 살겠죠.”

 카멜라가 걸음을 멈추었다.

 “부탁이 있어요.”

 같이 걸음을 멈춘 마르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 돌아오세요. 절 만나기 전 발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더 듣고 싶으니까.”

 마르카가 웃으며 대답했다.

 “살아 돌아올게요. 난 발미가 왜 당신하고 앞날을 떠올렸을지 알고 싶거든요.”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

 

 지나온 시간에 더 많은 나날을 더하고 나서, 서리로 뒤덮인 대지가 발 아래에 닿았다. 두터운 옷을 입은 마르카의 입에서 하얀 김이 났고 몸은 추위에 떨렸다. 한 번도 겪지 못한 냉기였다. 잠시 쉬는 동안 아까 투덜거리던 병사가 마르카의 어깨를 쳤다.

 “마르카! 저기 봐, 거의 다 왔어! 변경이다!”

 마르카는 병사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엄숙하고 비탈진 하얀 산악 지대가 멀리 보였다. 한 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높고 험준한 산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무리 걸어도 다다르지 못하는 게 아닐까.

 마르카는 콧등 한 가운데가 차가웠다. 병사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이네. 눈. 눈. 눈.”

 마르카는 천진하게 헤벌쭉 입꼬리를 올린 병사의 눈에서 어렴풋이 두려움을 읽었다.

 ‘쉬자, 지금은. 편하게.’

 그는 고개를 뒤로 젖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어머니 레아와 동생 바르바라에게 보낼 편지에 쓸 내용을 구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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