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공포물
파주(坡州)
작가 : 메뚜기
작품등록일 : 201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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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작성일 : 18-11-16     조회 : 357     추천 : 1     분량 : 4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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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외치면서 다시 시동을 켜려다가 기어 쪽으로 눈을 돌렸다.

 ‘D’

 시동이 안 걸린 이유. ‘D’

 “아! 이 병신.”

 민철은 스스로의 멍청함을 자책했다. 그렇다. 오토매틱 차량은 ‘P’나 ‘N’에 놓아야 시동이 걸리기 때문이다. 급하게 기어를 ‘P’에 놓고 시동을 걸었다.

 [부르르르릉!]

 경쾌했다. 급하게 액셀을 밟았다. 마치 경주라도 하듯 차량은 급하게 튕겨 나갔다.

 “휴! 십, 년, 감, 수.”

 하지만 세준이의 먹잇감을 모두 빼앗긴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 개새끼들아, 많이 먹고 배 터져 뒤져라.”

 그래도 덕분에 목숨은 건졌지만 허무했다. 잘못 없는 두 명의 젊은이를 사지로 몰고 간 때문도 있지만 다시 세준의 먹잇감을 구할 생각을 하니 앞길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고가 도로 위에 차를 세운 민철은 차 안에 있던 나머지 변종들을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물티슈를 이용해서 차량 내부를 세척했다.

 “좋은 차로 바꿔야겠다.”

 길에는 차량이 많았지만 열쇠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냉장고를 열었지만 세준이가 먹을 만한 것은 이제는 없었다.

 민철은 자동차 좌석 등받이를 뒤로 재낀 채 한참을 고가 도로 상에 멈춰있었다.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하지만 잠을 잘 수는 없었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들리는 소리라곤 뒤에서 들리는 세준의 으르렁거림뿐이었다. 참 한가로웠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 하는 이가 없었다.

 ‘며칠 전만 해도 밥 벌어먹겠다고 그 개고생을 했었는데, 사는 게 뭐라고…….’

 민철은 다시 플레이를 눌렀다.

 [♪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고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아! 슬프다. 이게 무슨 팔자냐?”

 날이 어둑어둑 해 질 때까지 깊은 사색에 잠겼다. 다행히 변종들은 민철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한 듯 했다.

 민철은 갑자기 무언가 결심한 듯 좌석 등받이를 일으켰다. 그리고는 내비게이션을 누르기 시작했다.

 ‘ㅅㅇㄷㅎㄱ ㅍㅈㅋㅍㅅ’

 

 

 ☜ 1년 전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다 숨었니?”

 “아니.”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다 숨었니?”

 “아직 아니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다 숨었니?”

 “응.”

 “말하면 안 되지.”

 “알았어.”

 “찾는다?”

 “응.”

 “말하면 안 된다니까?”

 “응.”

 “거참……. 어디 있지? 어디 숨었을까? 요기 숨었나? 아니면 여기 숨었나?”

 “키키키킥!”

 “어! 무슨 소리가 들리는 거 같은데, 밖에서 들리는 소린가?”

 “히히히!”

 “밖에 나갔나? 왜 이렇게 찾기 힘들지?”

 “히히! 나 여기 있는데.”

 “여보, 방금 무슨 소리 안 들렸어?”“글쎄, 못 들었는데요.”

 “방금 세준이 소리 난 거 같은데?”

 “히히히!”

 세준은 소파 옆에 고개만 파묻고는 아무도 못 찾은 곳에 숨어 있다고 착각한다.

 “우와! 너무 찾기 힘들다. 못 찾겠다. 꾀꼬리.”

 “나 여기 있지.”

 “아이! 깜짝이야. 여기 숨었었어? 정말 잘 숨었는데?”“아빠, 바보. 이것도 못 찾냐?”

 “아빠 바보 아니야. 세준이가 너무 잘 숨어서 아빠가 못 찾은 거야. 너무 잘 숨으면 찾을 수가 없어.”

 

 

 ☞ 서영대학교

 

 “하아! 하아! 하아! 하아!”

 [끼이이이익! 끼이이익!]

 쇠파이프가 바닥을 긁고 지나가는 소리다.

 “꼭, 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하아! 하아! 하아!”

 “내가 찾는 거 하나는 기가 막히거든.”

 “하아! 하아! 하아! 하아!”

 민정은 거친 숨소리가 혹여나 들릴까 손바닥으로 입을 막았다.

 “푸우! 푸우! 푸우!”

 [끼이이이익! 탁! 끼이이이익! 탁!]

 민철은 지팡이 짚듯 쇠파이프 끝을 손바닥으로 움켜쥐고선 바닥을 긁으면서 탁하고 내리치는 것을 반복한다.

 “우리 민정이, 많이 무서운가 보네? 아! 어떻게 알았냐고? 아까 네 친구가 그러더라, ‘민정아, 빨리 끊고 나와.’”

 [끼이이이익! 탁! 끼이이이익! 탁!]

 “내가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 줄까? 아마도 20년도 더 됐을 걸? 내가 너 만할 때쯤이었으니까.”

 [끼이이이익! 탁! 끼이이이익! 탁!]

 “동아리에 여자 신입이 두 명 들어왔는데, 한 녀석은 지금 너처럼 모자를 팍 뒤집어쓰고는 눈도 못 마주치는 거야.”

 [끼이이이익! 탁! 끼이이이익! 탁!]

 “예쁘지는 않았는데, 귀염성이 있더라고.”

 [끼이이이익! 탁! 끼이이이익! 탁!]

 “그런데, 너 예쁜 편이냐? 아직 얼굴을 제대로 못 봐서 말이야.”

 [끼이이이익! 탁! 끼이이이익! 탁!]

 “그래, 얼굴이 중요하냐? 마음이 중요하지. 그렇지?”

 [끼이이이익! 탁! 끼이이이익! 탁!]

 “하아! 하아! 하아! 하아!”

 “처음에는 관심 없었는데, 봉사 활동 할 때 보니까 참 열심인거야.”

 [끼이이이익! 탁! 끼이이이익! 탁!]

 “봉사 활동 마지막 날에 고민 끝에 내가 그랬지, ‘너 이번 주 토요일에 나랑 영화 볼래?’”

 [끼이이이익! 탁! 끼이이이익! 탁!]

 “그랬더니 좋다는 거야. 그거 알아? 그 때의 그 기분.”

 [끼이이이익! 탁! 끼이이이익! 탁!]

 “그리고는 그 때부터 서로 문자를 주고받기 시작했지.”

 [끼이이이익! 탁! 끼이이이익! 탁!]

 “우리는 마치 연인이라도 된 것처럼 문자를 주고받았어. 마치 연인이라도 된 것처럼…….”

 [끼이이이익! 탁! 끼이이이익! 탁!]

 “여자애가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지.”

 [끼이이이익! 탁! 끼이이이익! 탁!]

 “그런데 말이야 영화를 보러가기 전날 그 여자애가 문자를 했는데, 내용이 이랬어.”

 [끼이이이익! 탁! 끼이이이익! 탁!]

 “‘선배, 저 남자친구 생겼어요. 축하해주세요.’”

 [끼이이이익! 탁! 끼이이이익! 탁!]

 “순간 멍했지. ‘남자친구? 혹시 나를 딴 사람인척하고 말하는 건가? 아니면, 나를 떠보려는 수작인가?’”

 [끼이이이익! 탁! 끼이이이익! 탁!]

 “그런데 씨발, 그게 말이야, 그 남자친구가 말이야, 아! 씨발, 생각하니 열 받네.”

 [끼이이이익! 탁! 끼이이이익! 탁!]

 “그 씨발새끼가 바로 내 동기 녀석이었더라고, 내가 그 애한테 관심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야. 그런데 왜 나한테 축하해달라고 하냐고, 응?”

 [탁탁탁탁탁탁탁탁탁!]

 회상 과정에서 너무 흥분해서인지 민철은 쇠파이프로 바닥을 계속 찍어 내린다.

 “아! 쏘리. 어디까지 얘기 했더라? 아! 축하해달라는 거야. 다음 날 그 애와 영화를 같이 봤을까, 안 봤을까?”

 [끼이이이익! 탁! 끼이이이익! 탁!]

 “그래, 같이 봤어. 약속은 약속인지라, 그냥 선배와 후배로 말이야. 그런데, 그 때 그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말이야. 세상에서 가장 드럽게 재미없는 영화였지.”

 [끼이이이익! 탁! 끼이이이익! 탁!]

 “학교 다니기 싫더라고. 그 새끼도 보기 싫고, 그 계집애도 보기 싫고.”

 [끼이이이익! 탁! 끼이이이익! 탁!]

 “동아리도 그 때부터 안 나갔는데, 6개월이 지났나? 우연히 학교에서 그 여자애를 만났어.”

 [끼이이이익! 탁! 끼이이이익! 탁!]

 “그런데, 그 여자애가 반갑다고 다짜고짜 팔짱을 끼는 거야. 깜짝 놀라서 뿌리치면서 내가 그랬지. ‘야, 네 남자 친구 팔짱이나 껴.’라고 했는데, 남자 친구 없다는 거야.”

 [끼이이이익! 탁! 끼이이이익! 탁!]

 “사귄 지 한 달 만에 헤어졌더라고. 그리고 우리는 다시 예전처럼 문자를 주고받았어. 마치 연인이라도 된 것처럼. 아니, 완전 연인이었어. 문자 내용을 친구들한테 보여줬더니 나를 좋아하고 있는 거래.”

 [끼이이이익! 탁! 끼이이이익! 탁!]

 “그래서 다음날 고백했지. 그런데 싫데, 그냥 선배로서 좋데.”

 쇠파이프 소리가 머졌다.

 “휴! 그러면서도 계속 문자 질을 하는 거야. 애인인 것처럼 말이야. 그래서 얼마 후에 또 고백했다가 또 까였어.”

 “하아! 하아!”

 “몇 번 고백 한줄 알아? 자그마치 4번. 내가 왜 이렇게 집요하게 싫다는데도 4번이나 고백한 줄 알아? 그건 말이야, 그 애가 그렇게 오해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야.”

 “하아! 하아!”

 “씨발,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그 여자 애가 나를 가지고 논 거더라고. 근데, 그 때는 밉지 않았어. 괘씸했지만, 좋아하니까, 좋아하니까, 너그러워지더라고.”

 “하아! 하아! 하아! 하아!”

 “그런데 말이야. 왜 갑자기 그 애 생각이 나냐고? 열 받게 말이야, 응? 왜, 왜 잊어버렸었는데, 왜 생각이 나냐고?”

 “하아! 하아! 하아! 하아!”

 “너를 보니까 그 때 그 애가 생각이 났나봐. 얼핏 스친 너의 모습에서 그 애를 봤거든.”

 “하아! 하아! 하아! 하아!”

 “그리고 말이야. 지금까지 나만 혼자 얘기해서 미안한데, 그거 알아? 내 목소리에 묻힐 줄 알았지? 나, 나 말이야, 너 숨소리 다 들려.”

 [우당탕 탕탕!]

과하객 18-11-19 06:55
 
* 비밀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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