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우는 주사기가 들어 있는 작은 지퍼백을 열었다. 작은 종이에 방법이 적혀 있었다. 왼팔을 걷어 고무줄을 채웠다. 알콜솜을 뜯어 혈관부위를 닦았다. 주사기를 핏줄 근처에 가져다댔다.
서투른 솜씨로 혈관을 찔렀다. 그리고 피를 뺐다. 다른 알코올 솜으로 주사바늘이 빠져 나오는 자리를 눌렀다. 몇 분 후. 손민우는 와이어를 먼저 보내고 그 끝에 주사기를 담은 지퍼백을 붙였다. 남기민에게 신호를 보내자 와이어가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손민우는 카메라 아래를 살펴보았다. 통로에 좀비들이 보이질 않았다.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지자 카메라를 더 아래로 내렸다. 하지만 카메라 선의 길이는 5m 밖에 되지 않아 아래쪽을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카메라를 감은 후 와이어 끝에 달았다. 그런 다음, 녹화 버튼을 누른 후 카메라를 내려 보냈다. 바닥에 거의 다 내려 보낸 후, 와이어를 천천히 돌려 카메라를 회전 시켰다. 그리고 다시 와이어를 감아 올렸다.
손민우가 카메라를 재생시켰다. 화면에 2층 방이 보일 때 멈췄다. 화면이 뚜렷하진 않지만 방안에 좀비들이 있었다. 다시 재생을 눌렀다. 1층 방이 보일 때 다시 멈췄다. 1층에도 역시 좀비들이 방에 있었다.
“습관적으로 자기 방에 찾아 들어갔나? 아닌데, 교도관들도 다 방에 있는데...”
몇 번이나 화면을 다시 돌려보면서 확인을 했다.
“저렇게 좀비들이 방에만 있다면, 바닥에 흘러져 있는 피를 수건 같은 것으로 묻혀서 가져 올 수 있겠는데... 근데, 그 피가 내 손에 묻으면 나도 좀비 되는 거 아냐?”
손민우는 무전기를 들어 남기민을 불렀다. 몇 가지 상황을 알려 주면서 책임자에게 물어 보라고 했다.
윤팀장은 남기민을 통해 손민우의 얘기를 전해 들었다. 윤팀장도 천장에 갇힌 사람이 감염자의 혈액을 채취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바닥에 흘린 피라도 확보해서 분석을 해본다면 바이러스가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윤팀장은 남기민에게 연락을 하고 드론을 보냈다. 박스를 받은 남기민은 윤팀장의 지시대로 물품을 풀어서 와이어 끝에 매다는 작업을 했다. 멸균거즈, 비닐장갑, 비닐팩, 낚시줄과 바늘 세트, 포장된 납추를 차례차례 엮었다. 다음 손민우에게 신호를 보냈다.
채혈도구를 전달받은 손민우는 물품을 공구박스에 담았다. 천장 아래로 고개를 내밀어 피가 많이 보이는 바닥을 찾았다. 라이트를 켜고 트레이 위를 조심스럽게 걸었다. 적당한 위치에 도착한 후 천장 마감재를 칼로 조심스럽게 조각내어 위로 올렸다.
공구박스에서 물품을 하나씩 꺼내 천장 마감재 위에 정리했다. 그런 다음 윤팀장의 쪽지를 찬찬히 읽고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낚시줄을 풀어 두고 손에 장갑을 꼈다. 거즈를 꺼내 낚시바늘에 끼운 다음 아래로 내려 보냈다.
바닥에 거의 다다랐을 때 낚시줄을 흔들어서 거즈를 최대한 멀리 보냈다. 그리고 천천히 줄을 당겨 거즈가 바닥에 뿌려져 있는 혈액에 닿게 했다. 낚시줄을 다시 올렸을 때 거즈에는 피가 거의 묻어있지 않았다. 바닥에 있던 피가 말라붙은 것이다.
잠시 고민을 하던 손민우는 링거호스를 풀어 지퍼백에 물을 담았다. 그 물을 조심조심 가지고 와서 아까의 위치에 던졌다. 툭, 소리가 났지만 다행히 좀비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대로 몇 분을 기다렸다.
거즈를 바꿔 단 낚시줄을 내렸다. 아까처럼 멀리 떨어트렸다. 그 다음 낚시줄을 천천히 당겨 지퍼백이 떨어진 근처에서 멈췄다. 스며들게 할 생각이었다. 충분하다고 생각되었을 때 낚시줄을 끌어당겼다.
그런데 갑자기, 철창 안에서 손이 쑥 나오더니 줄을 잡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손민우는 트레이 위에 주저앉았다. 잡고 있는 낚시줄에는 아직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이걸 어쩌지? 힘으로 당겨 볼까? 아니면 흥미를 잃을 때까지 그냥 내버려 둘까?”
고민하던 손민우는 다시 한 번 놀랐다. 잡고 있는 낚시줄이 까딱까딱 움직인 것이다. 놀란 손민우는 아래를 내려다 봤다. 줄을 잡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얼굴은 가리고 있었지만, 옷을 보니 수용자인 것 같았다. 그 사람은 종이를 보여주면서 뭔가 쓰는 시늉을 했다.
“편지를 쓰려는가 보다.”
손민우는 줄을 잡은 채로 기다려 주었다. 다시 낚시줄이 몇 번 까딱거리고 난 후 줄이 느슨해졌다. 아래를 보니 그 사람이 종이를 가리켰다. 손민우는 서둘러 낚시줄을 올렸다. 먼저 종이를 떼서 공구박스 안에 넣었다.
다음은 윤팀장이 시킨 대로 피 묻은 거즈를 비닐백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다른 비닐백에 한 번 더 넣은 후 마지막으로 지퍼백에 넣었다. 그리고 와이어에 단단히 매달아 상근에게 알렸다.
그리고, 그 사람이 보낸 종이를 펼쳤다.
『 여기도 사람 있습니다. 그날 도망치다가 이 방에 들어왔는데, 문을 닫아서 살았어요. 며칠 동안 물만 먹었습니다. 제발 좀 구해주세요. - 5939 윤상근 드림. 』
남기민은 손민우가 보낸 지퍼백이 도착하자 조심스럽게 테이프를 떼었다. 그리고 밀폐용기 안에 담아 두껑을 막았다. 밀폐용기를 다시 한 번 지퍼백에 담은 후 주변에 소독약을 골고루 뿌렸다. 그리고 박스에 담아 윤팀장에게 무전을 했다.
“윤팀장님, 드론 박스에 담았습니다.”
“네, 금방 드론이 작동하니까 물러나 있으세요.”
“알겠습니다.”
윤팀장은 보호복과 전면마스크를 하고 드론이 오는 쪽으로 나갔다. 자신과 똑같은 복장의 질병관리본부 직원과 함께 박스를 열어 비닐백을 꺼낸 후 자신들이 가져 온 저압밀폐박스로 옮겨 담았다. 그런 다음, 근처에 대기하고 있는 헬리콥터에 박스를 실어 직원과 함께 보냈다.
손민우는 이 공간 안에 자신 말고도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가 낚시줄을 잡을 수 있으니 비슷한 방법으로 음식을 보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음식들을 비닐백에 담아 전기테이프로 감았다.
이어 포장을 뜯을 때 피를 만지지 않게 조심하라는 메모를 남겼다. 낚시줄 끝에 비닐백을 매달고 뚫어 놓은 천장구멍으로 갔다. 그리고는 아까와 같은 방법으로 흔들어 비닐백을 떨어트렸다. 이번에는 소리가 더 컸다.
아니나 다를까. 비닐백 근처의 방에서 좀비가 걸어 나왔다. 손민우는 몸을 숨기고 카메라를 꺼내 비춰보았다. 화면 속에서 좀비는 비닐백 근처에서 멈추더니 가만히 서있다. 아무래도 주변을 느끼는 것 같았다.
좀비에게 시각과 청각이 있는 건 손민우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후각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 숨을 죽여 화면을 들여다보는데 좀비가 천천히 방으로 들어갔다.
“오징어가 분명 냄새가 많이 날 텐데... 아니지, 오징어를 먹지 않는다면 냄새를 맡아도 반응하지 않을 수도 있겠군. 도대체, 방으로는 왜 들어가는 거냐?”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니 아까 그 사람이 철창에 다가와서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낚시줄에 손에 닿지 않는지 그냥 들어갔다. 잠시 후 뭔가를 가지고 다시 나왔다. 칫솔인 것 같았다.
칫솔로 낚시줄을 걸려고 하는데 옆방에서 아까의 그 좀비가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신발을 신고 있지 않아 발소리가 나지 않는 것 같았다. 다급해진 손민우는 구멍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피해! 좀비야!”
갑자기 방에 있던 좀비들이 뛰어 나왔다. 그 사람이 비닐백을 가지고 들어가는 건 성공 했지만 몇몇 좀비가 그의 철창 앞에서 매우 공격적으로 팔을 휘두르며 으르렁 거렸다. 그러자 다른 좀비들도 그곳으로 몰려가서 함께 으르렁 대기 시작했다.
천장을 향해 으르렁 거리고 팔을 뻗는 놈들도 몇이 있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그만두었다. 그 사람이 걱정되었지만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없어서 조용히 엎드려서 화면만 보고 있었다.
다행히 그의 철창 앞에서 으르렁 거리던 좀비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 자리를 떠났다. 그는 방 안의 보이지 않는 곳에 잘 숨어 있는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손민우는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다. 1층 생존자의 방에서 가장 가까운 천장을 뚫어 음식을 안전하게 전달해주는 루트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공구박스에서 공업용 커트칼을 꺼내들고 두 번째 구멍으로 갔다.
거기서부터 대략의 거리를 가늠한 후 발걸음을 재며 트레이 위를 걸었다. 그리고 세 번째 천장을 뚫기 시작했다. 이미 한 번 해 본 일이라 작업이 어렵지는 않았다. 이제 남기민에게 음식을 더 보내라고 해서 테스트를 해 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