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테마파크] /가족, 영원한 동반자/ 성 안에 크게 번진 괴질과 여러 질병, 가족의 목숨을 위협하다.
글쓴이 :
한작협 16-04-12 13:36
조회 : 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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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 2월 25일, 신석민이 고약(膏藥)의 일로 서찬규를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5월 25일, 조모께서 설사병으로 한 달을 넘게 고생하셨으나, 지금은 조금 회복되어 다행이다.
1850년 5월 5일, 수성의 손낙진(孫洛振) 어른이 그의 손자의 천연두 증상을 보기 위하여 와서 머물렀다.
1852년 6월 13일, 조모의 기제사일이다. 가친께서 설사병이 회복되지 않았고, 또 이웃에 부정한 기운이 많이 있어서 능히
의식을 행하지 못하고, 다만 시물로써 분향하였다.
1853년 3월 9일, 큰 자형 구형로의 중상일이다. 눈병으로 괴로워 가서 곡하지 못하였다.
3월 12일, 용동(龍童)에게 천연두를 예방접종하였다.
5월 20일, 근래에 가친의 고통 때문에 애가 탄다.
5월 25일, 가친이 학질(虐疾)로 괴로워하였으나, 지금은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이날 가친을 모시고 은암에 갔다가 늦게 나는
곧 집으로 돌아왔다.
7월 10일, 처사 안선응이 여행의 고달픔이 병이 되었다. 비록 조금 차도는 있으나 일행의 기세로 함께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다.
안노선이 조섭하는 뜻으로 주인을 엄중히 단속하고, 일행은 출발하여 백암에 이르렀다. 한 처사가 또 둔종으로 말을 타기도 어렵고
걷기도 어려워 일행은 또 머물렀다.
8월 4일, 밤을 지나며 설사를 겪었다. 신기가 건강하지 못하여 겨우 출발하여 안보에서 묵었다.
12월 1일, 볼기에 난 종기로 매우 고통스럽다. 견여를 타고 암자에 올라오니, 쌍고 이규락(자는 구서)씨는 와서 머무른 지가 이미
여러 날 되었다. 서로 학문을 담론하기에 좋았다.
1854년 3월 8일, 요즘 팔이 부어서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조금 나아졌다. 참 다행이다. 진사 박기전씨가 내방하였다.
이승덕이 이 때 서울에 있었는데 저녁에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5월 26일, 망정에 가니 사촌이 종기로 고생하고 있었다. 저녁 늦게 돌아오니 김석일과 원북의 족인 이선씨가 내방하였다.
1855년 6월 7일, 더위 때문에 생긴 설사를 만나 고생하고 있다.
10월 7일, 요즘 약령시장에 손님들이 많다고 하였다.
1858년 7월 15일, 여러 날 장독(瘴毒)에 시달리다보니 피곤함에 괴로워 신음하였고 도무지 좋은 정취라곤 없었다.
약 달이는 화로와 차 끓이는 솥이 당나라 옷처럼 붙어 따라다니니, 고민스럽고 고민스럽다.
저녁에 오형복·오형진·서경모·장계훈이 모두 도착하였다.
7월 16일, 아침에 일출을 보았다. 뒤편 언덕에 있는 목장에 올라가보니 훌륭한 망아지들과 큰 어미 말들이 무리를 지어 달리고 있었다. 짐승이 길러지고 번식되고 있음을 알 만하였다. 낮에 여러 사람들과는 작별을 하고 오형복·김정고·장계훈과 함께 후동서숙에
도착하였는데, 바로 오·장 두 사람의 거처하는 곳이었다. 이어 출발하여 허령을 넘어 20리를 가서 연일 약전의 이공민의 서숙에
당도하여 그곳에서 유숙하였다. 김정고도 함께 따라서 왔다.
10월 27일, 반용환을 만들었다. 가친께서 복용하시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12월 12일, 지난밤에 우연이 한질(寒疾)을 앓게 되어 종일 신음하느라 길을 나설 수가 없었다.
1859년 1월 10일, 가친께서 담병(痰病)이 아주 심해서 고생하시더니 요즘은 조금 회복되셨으나,
타들어가는 듯한 마음은 조금 나아지셨다고 늦추어 지지 않는다.
10월 4일, 서울에 괴질이 크게 번졌는데, 기세가 마치 언덕에 불붙은 듯하여 죽은 사람이 아주 많다고 하니, 괴이하다.
1860년 1월 27일, 지난밤부터 독한 감기로 고생하였다. 1월 29일,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아 세수하고 머리를 빗을 수 없었다.
5월 1일, 가친께서 병으로 앓으시며 고생하시니, 속이 몹시 타는 듯하고 고민스럽다.
5월 11일, 가친의 병고가 아직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으니, 애가 타고 고민스럽기 짝이 없다.
6월 29일, 망정의 당질부가 체서병(滯暑病)이 있다고 알려왔기에, 약을 지어 이날 밤에 사람을 보냈다.
8월 2일, 지난달부터 성안에 괴질이 크게 번져 성 안팎에 죽은 사람이 수도 없이 많다. 그 증세가 곽란과 같은데,
기세가 들판에 불을 붙인 듯 급하다. 8월 5일, 용아가 별학(鱉瘧)으로 연이어 7~8차례 앓고 있으니, 고민이다.
8월 7일, 묘동의 박해린 부자와 파회의 진사 박철현이 모두 서울에 있다가 괴질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참혹하고 놀라운 일로 애석하다.
8월 9일, 가친의 설사병이 8~9일 지속되다가, 이제야 비로소 조금 회복되니 다행스럽다.
8월 16일, 향사를 잘 행하였다. 경백은 설사 때문에 서원에 남고, 다른 사람들은 자리를 파하였다.
8월 17일, 이날 경백이 태촌으로 돌아갔다. 이날 새벽 연거의 족형이 부인을 잃었다. 역시 괴질 때문이었다.
8월 18일, 장인의 병환이 아주 위중하다고 하여, 이날 달려가서 환후를 살펴보고 돌아왔다.
9월 23일, 작은아버지의 환후 소식을 듣고 단음으로 갔다.
9월 24일, 계부의 환후가 조금 회복되어 오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9월 25일, 약을 지어 찬거리와 함께 단음으로 보냈다.
1861년 1월 12일, 가친께서 감기가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인산으로 갔다.
1월 13일, 가친의 환후가 조금 회복되었다.
3월 20일, 가친의 생신이다. 지극한 뜻으로 즐겁게 해드릴 길이 없으니, 마음이 한탄스럽다. 윤 생질이 약간 신음하는 고통이 있어서
부득이 이날 연봉으로 가마를 태워보냈다.
3월 22일, 지난밤에 가친께서 설사의 증세가 있어 곽정산과 강삼탕을 썼더니 아침에 조금 회복이 되셨기에, 다시 가미리중탕을 썼다.
3월 29일, 집의 여종이 염병을 10여 일 동안 앓았는데, 겨우 위험한 지경은 면하였다.
4월 20일, 오후 늦게 집에 도착하였다. 아버님께서 안녕하시니 다행이나, 맏딸아이가 염병으로 고통스러워하니, 고민이다.
5월 6일, 부모님을 뵈러 월촌에 갔다. 오후에 들으니, 족친 자후가 원통하게도 죽었다고 하여, 곧바로 달려서 돌아왔다.
자후가 아픈 지가 이미 10여 일이었는데, 지금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애처롭고 애처롭다.
배경이야기
◆ 조선시대 질병관리
1849년부터 1861년까지 가장 많았던 질병은 설사이다.할머니, 아버지, 본인, 친구 등 많은 주변인들이 설사병을 앓았다. 특히 아버지는 설사, 감기, 담병, 학질 등에 걸린 적이 있고, 천연두, 장티푸스, 괴질 등의 전염병과 감기, 눈병, 종기, 팔이 붓는 병, 체서병滯暑病 등이 있었다. 1859년에는 괴질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었고, 아들은 별학을 앓았으며, 1861년에는 여종과 맏딸이 장티푸스를 앓았다. 그러면서 전염병으로 뒤숭숭한 상황을 ‘약령시장에 손님들이 많다 한다’고 표현했다. 때론 약을 직접 만들기도 했던 것 같다. 고약膏藥, 반용환, 곽정산, 강삼탕, 가미리중탕을 만들어 드렸다고 했다.전염병이 극심했던 듯하나 역사 기록물에 해당 년도의 관련 기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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