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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테마파크] 아름다운 여인 앞에서 사나이 결심이 무너지다
글쓴이 :
스토리야
16-12-23 16:47
조회 :
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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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7]
1605년 12월 26일, 박계숙(朴繼叔)은 집결지인 회령 근처인 경성에 머물고 있었다. 짐 실을 말과 타고 갈 말을 구하지 못하여 출발하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어제 성내에서 만나 어울려 놀았던 애춘이 아침에 어여쁜 여인과 함께 박계숙(朴繼叔)을 찾아왔다. 애춘이 “어제는 긴한 일이 있어 돌아갈 수밖에 없어, 오늘 다시 왔습니다” 라고 하며 함께 온 동무를 소개하였다. 애춘의 미모도 상당하였지만 함께 온 아가씨는 그보다 더욱 아름다웠다.
금춘(今春)이란 이름을 쓰는 16세 아가씨인데, 모습은 서시(西施)가 놀랄 정도이고 아름답기는 왕소군(王昭君) 뺨치는 외모였다. 이에 박계숙(朴繼叔)은 동료들과 함께 애춘, 금춘과 어울렸는데 이 금춘은 바둑이나 가사 같은 기예에도 능하고 가야금과 거문고도 능숙하게 타는 것이 아닌가. 재색을 겸비한 금춘의 모습에 박계숙(朴繼叔)은 함께 밤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애초 변방에서 근무하는 동안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겠단 스스로의 맹세를 상기하고는 꾹 참았다. 애춘과 금춘을 돌려보내고 동료 군관들과 술자리를 갖다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역시 말이 구해지지 않아 숙소에 머물고 있는데 금춘이 찾아왔다. “공께서는 저를 비천하게 여기지 마세요. 어제 밤 당신 숙소를 찾아갔는데 방안 가득히 친구들과 어울리길래 그냥 돌아왔습니다” 라고 하는게 아닌가. 안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박계숙(朴繼叔)은 금춘을 방에 들려 종일 이야기를 나누며 어울렸다. 어제는 처음의 맹세를 떠올려 꾹 참았으나 종일 어여쁜 아가씨와 어울리다 보니 슬며시 딴마음이 들기 시작하였다.
박계숙(朴繼叔)은 ‘호탕한 기운의 남아가 반년이나 집을 떠나 있었는데, 어찌 여자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자 드디어 마음의 결정을 하고 슬쩍 금춘에게 추파의 시를 던졌다.
비록 장부일지라도 간장이 철석이랴
미인을 경계할 것을 철칙으로 삼았으나
성안의 아름다운 미인을 못잊을 듯 싶구나
그러니 금춘이 답하기를
요임금 순(巡)임금도 친히 보신 듯 하고
고금의 사리에 모두 통달한 명철한 이를 어디 두고
동서 구분도 못하는 사내를 걸어 무엇하리
이에 내가 화답하기를
나도 이러하나 낙양성 동쪽 나비이러라
광풍에 휩쓸려 여기저기 다니더니
변방의 이름난 꽃가지에 앉아보려 하노라
금춘이 다시 화답하기를
아녀자 농담을 대장부는 곧이 듣지마오
문과 무를 겸비한 것을 나도 잠깐 아옵니다
하물며 용맹한 무사를 아니걸로 어쩌리
그날 밤 박계숙(朴繼叔)은 금춘과 함께 동침하였다. 그리고 잊혀지지 않을 듯 한 정을 나누었다. 박계숙(朴繼叔)의 동료 김공 역시 여자를 가까이할 뜻이 없었는데, 이날 갑자기 애춘과 함께 동침하였다.
배경이야기
◆ 기생들의 기예에 대하여
박계숙이 전날 어울렸던 기생이 친구를 소개해 주어 박계숙과 함께 어울리게 된 내용이다.
이야기 중에서 금춘은 바둑이나 가사 등의 기예에 능하고 거문고와 가야금을 다룰 줄 아는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박계숙과 가사를 지어 주고 받는 것도 매우 능숙하게 해내고 있다. 보통 기생들은 양반 남성들과 함께 어울리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기생들 중에는 기본적인 한문소양이나 바둑, 음악 등의 기예 등을 교육받은 이가 상당수 있었다.
실제로 조선시대 이름난 기생들 중에서 시작능력이나 음악, 기예 등에서 명성을 얻은 이가 적지 않았다.
한편 이야기 안에서 매우 주목되는 것은 기생인 여성이 적극적으로 먼저 남자의 처소를 찾아가 어울리는 것이다.
박계숙의 일기 안에서는 관노비나 기생 등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일화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는데, 이 이야기 역시 그 중 하나이다.
양반 남성들에게 성접대를 주 업무로 하는 기생들이지만, 오히려 마음에 드는 남자들을 찾아 연애를 즐기기도 하던 것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박계숙 역시 이러한 기생들을 천박하다거나 음란한 여자로 여기지 않고 흔쾌히 어울리던 것을 볼 수 있다.
유교 사회에서 여자의 정절을 강조하던 조선사회의 또 다른 이면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다.
출전 : 부북일기(赴北日記)
저자 : 박계숙(朴繼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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