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테마파크] 고강을 피하고자 하는 이들로 온 고을이 들썩이다
글쓴이 : 스토리야  16-10-19 16:07   조회 : 3,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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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2년 2월 29일, 맑은 날씨였다. 아침 일찍부터 금발이 김령을 찾아왔다. 그 연유를 물어보니, 이번에 군적에 편입시킬 사람들을 뽑기 위해 고강(考講)을 실시하는데, 시험 대상자 장부의 본인 이름 아래에 ‘병폐(病廢)’, 즉 병으로 폐인이 되었다고 적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번 고강을 담당하는 사람이 봉화 수령이니, 봉화 수령에게 김령이 이에 대해서 한 마디 해주었으면 하고 부탁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그렇지만 벌써 이와 같이 고강을 빠지려고 하는 자들이 온 경상도에 가득 차 있으니, 아마 봉화 수령에게 김령이 몇 마디 해준들 어찌할 수 없을 노릇이었다. 하긴 금발의 처지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올해 나이가 60인데, 시험을 보고 떨어지면 군역을 져야 할 처지가 되었으니 딱한 노릇이었다. 아무리 나라법이라 하여도 나이 60 노인을 고강 응시 대상에 넣어둔 것은 잘못된 처사인 듯하였다.
금발뿐만이 아니었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는 권상충, 금호겸, 김초, 김염 등이 찾아왔다. 권상충은 감사를 보고자 해서였고, 금호겸은 손형세(孫亨世)라는 자와 소송 중이었으므로 안동으로 가야 하는데, 김령을 통해서 경상 감사에게 청탁을 넣고자 해서였다. 이자들의 사정이 딱하다 한들 어찌 그런 청탁을 공공연히 할 수 있단 말인가? 여러 번 거절의 뜻을 내비치니, 모두들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권상충은 한참 동안 머무르다가 윗마을로 향하여 감사를 만나보기를 간청하였으니, 그 모양이 몹시도 구차하였다.
오후에 감사가 기별을 보내왔는데, 이미 현으로 들어온 듯하였다. 예안 고을 사람들이 전세(田稅)에 관한 일 때문에 글을 올렸는데, 감사가 백성들의 뜻대로 처리하도록 지시하였다고 한다. 또 고을 사람들이 글을 올려 훈련도감에 납부하는 삼수량(三手糧)은 좁쌀로 대신 내도록 간청하였는데, 이것 역시 백성들의 뜻대로 처리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렇듯 백성을 사랑하고 원칙을 지키는 감사에게 사사로운 청탁을 넣은들 될 리가 있겠는가. 김령은 오전의 여러 사람들의 간청에 흔들리지 않은 것이 잘 한 일이라 생각하였다.


배경이야기

◆ 조선 후기 군역의 괴로움

이 이야기는 군역에 차정할 사람들을 가려내기 위해 고강(考講)을 실시하는데, 시험 대상에서 제외되고자 청탁하는 이들이 김령을 찾아왔다는 내용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금발의 경우는 나이가 60살의 고령으로 군역에 차정되는 것이 두려워 직접 청탁에 나서기도 하였다. 본래 법대로 한다면 60살이 지나면 본래 군역에 있더라도 역에서 풀릴 나이인데, 금발이 이렇게 청탁을 한 이유는 얼핏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배경에는 조선시대 군역 운영의 실상이 자리하고 있다. 군역은 본래 15-60세의 성인 남성이 직접 군인이 되는 것이었지만, 이미 16세기부터 직접 군대에 가지 않고 포를 납부하는 것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아울러 군역에 차정할 장정의 수가 점차 감소하면서 나이가 지나거나 혹은 나이가 어린 데도 군역을 부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심한 경우 이미 사망한 사람에게도 군역을 부과하여 그 자손들에게 군역 대신 세금을 납부하도록 종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것을 백골징포라 하였고, 어린이에게 부과하는 것을 황구첨정이라고 불렀다.
실제 군역 운영이 이러하였기에 나이가 60세가 되어 군역에 차정되더라도 언제 군역에서 면제될 지는 기약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 하나, 세금 부과의 부담 외에도 사회적인 측면에서 군역을 지면 양반이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금발이 노구에도 불구하고 시험 대상에 빠지기를 간청한 것이었다.



출전 : 계암일록(溪巖日錄) 
저자 : 김령(金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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