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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생각시의 살인교사
작가 : 기쁨을아는몸
작품등록일 :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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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반목(反目) - ①
작성일 : 17-11-16     조회 : 363     추천 : 0     분량 : 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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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2016년 12월 31일, 03:51

 

 

 18. 반목(反目) - ①

 

 

 본회의장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회의장 가장자리와 통로는 물론 회의장 문 바깥쪽까지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학현과 지혜는 이미 30여분 전부터 본회의장에 와 있었다. 둘은 의장석 부근에서 핵심 측근들과 함께 논의를 하기도 하고 회의장 분위기를 살피기도 하면서 회의 준비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반면 동원과 지인, 그리고 이제는 기력을 찾은 승희는 의장석이 잘 보이는 왼편 앞자리에 앉아 회의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자리는 학현과 지혜가 사전에 그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해준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회의장 전체가 북적이는 가운데에서도 유독 정돈된 구역이 하나 있었다. 바로 방청석이었다. 그곳엔 기자들과 국정원 연락관, 경찰청 정보과 직원들이 빼곡히 앉아 취재와 정보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기자들 틈엔 지혜의 애인인 재필도 끼어 있었다. 그리고 방청석 출입문 옆에는 몽둥이를 든 민철이 일련의 무리들과 함께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엄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간간히 학현, 지혜와 눈빛을 교환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드디어 4시 1분 전, 학현이 의장석에 앉아 의사봉을 두드렸다.

 

 땅! 땅! 땅!

 

 “여러분, 잠시 후 4시부터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장내를 정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회의장 안을 가득 메우고 있던 소란스러움이 일시에 잦아들었다. 이윽고 벽시계의 바늘이 정확히 4시를 가리키자 학현은 지체 없이 회의를 시작했다.

 

 “여러분! 저는 권혁재 의원실의 보좌관 남학현입니다. 거두절미 하고 묻겠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아직도 ‘우리가 살기 위해선 의원들을 죽여야만 한다’는 사실에 의문을 가지신 분이 계십니까?”

 

 사람들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학현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럼 또 묻겠습니다. 수 시간 전에 우리가 살기 위해 저지른 일들, 또 앞으로 행할 일들이 나중에 처벌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적지 않은 사람들의 뇌리엔 수 시간 전 자신들이 의원들을 죽였던 장면들이 슬라이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사람들의 안색이 대번에 굳어졌다. 학현은 또 말했다.

 

 “혹여 ‘내 손으로 의원을 죽이진 않았으니까…….’라며 자신은 안전할 거라 여기는 분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크나큰 오산입니다. 직접 의원들을 죽이지 않았더라도, 여기서 살아나가는 것 자체가 의원 살해를 묵인·방조한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공범이라 이 말입니다!”

 

 학현은 그러면서 의장석의 탁자를 손바닥으로 탁 내리쳤다. 사람들의 어깨가 움찔했다. 학현은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사람들의 이목이 단숨에 학현에게로 집중됐다. 학현은 살짝 우쭐해져서 말했다.

 

 “죽은 사람이 있더라도 죽인 사람만 없으면 되는 겁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말이 대번에 이해가 가질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학현은 다시 말했다.

 

 “우리가 모두 입을 다물고 CCTV 기록도 모두 파괴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의 표정이 완전히 밝아진 건 아니었다. 학현은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알고 있었다.

 

 “설마 여기저기 남은 핏자국하고, 둔기나 흉기 같은 것에 묻은 지문이 걱정돼서 그러시는 겁니까?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걸 휘두르는 장면이나 자백, 증인이 없는 한 그런 물증들만 가지고는 법적으로 범행 확정이 불가능하니까요. 그러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사람들은 그제야 비로소 얼굴이 펴졌다. 그러자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이번엔 학현이 돌연 정색을 하며 말했다.

 

 “하지만 완벽을 기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두 가지 있습니다. 우선 여기 이 앞에 서명부가 보이시죠? 회의가 끝나면 여러분들은 한분도 빠짐없이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비밀을 준수하고 공동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뜻으로 이 명부에다가 서명을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저희가 나눠드리는 식별표를 받아 항상 목에 걸고 다니셔야 합니다. 만약에 서명을 거부하거나 식별표가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비밀 준수에 반대하는 것으로 간주돼 즉각 응분의 조치가 취해질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학현은 그러면서 좌중을 싸늘한 시선으로 휙 휘둘러봤다. 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말 안 들으면 죽여 버리겠다.’는 소리를 저리도 서슴없이 할 수가 있다니, 사람들은 그 기세등등함에 눌려 대번에 꿀 먹은 벙어리가 돼 버렸다. 개중에는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키는 이들까지 있었다. 본회의장엔 한동안 고요한 정적이 감돌았다. 그로인해 학현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더욱 도드라졌다.

 

 “그리고 두 번째로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은 바로 …….”

 

 그런데 학현이 이번엔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뜸을 들였다. 눈동자도 살짝 떨리고 있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사뭇 긴장한 기색이었다. 그렇게 자신만만해하던 방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난데없이 왜 저러나 싶어 침묵 속에 학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자 이번엔 도리어 학현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오른 편에 서 있던 지혜를 쳐다봤다. 지혜 또한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혜는 학현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학현은 이번엔 방청석 출입문을 통제하고 있던 민철을 쳐다봤다. 민철 또한 지혜처럼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민철도 학현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마침내 학현은 시선을 자기 앞에 놓인 의장석 탁자로 가져갔다. 그리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런 다음 숨을 한차례 깊이 들이마셨다가 아주 오랫동안 고요히 늘이며 내쉬었다. 그러고 잠시 후, 돌연 눈알을 무섭게 부라리며 방청석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본회의장이 떠나가라 고함을 쳤다.

 

 “…… 여기에서 일어난 일들을 유출할 게 분명한 저들을 모두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그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방청석 쪽으로 쏠렸다. 그곳에서는 학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민철이 이끄는 무리들이 기자들과 정보기관원들을 덮치고 있었다.

 

 “죽여!”

 

 “죽어라, 이 자식들아!”

 

 그것은 거의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칼이나 둔기 같은 무기들이 들려져 있었다. 처음에 본회의장을 습격할 때의 태도나 장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들 대부분은 초반부터 열성적으로 민철과 행동을 같이 한 사람들이거나, 이후에 변절하여 가담한 전경대와 경위들이 주축이었다. 광기에 사로잡혀 있거나 무술에 능한 그들에게 소수의 정보기관원들과 기자들은 애초부터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들은 둔기에 얻어맞거나 칼에 찔려 속속 죽어나갔다.

 

 “으아악!”

 

 그다지 넓지 않은 방청석 공간에서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뒤엉켜 난투극을 벌이고 있는 탓에, 일부는 방청석 펜스 밖으로 밀려나 본회의장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개중에는 떨어진 이후에도 여전히 죽지 않고 기어서 도망치려 하거나 신음소리를 내며 꿈틀대는 사람도 있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학현은 다급히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저기 저 놈들! 그냥 가게 두면 안돼요! 죽여요! 어서요!”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처음엔 피투성이가 된 그들이 징그러워 멀찍이 서서 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치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 둘 그들에게 달려들어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달려든 이는 겨우 한 명 뿐이었지만, 그 수가 수십 명으로 불어나는 데에는 채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학현은 그제야 비로소 한숨을 돌리며 의자에 도로 털썩 앉았다.

 

 그러나 지혜는 달랐다. 소란이 시작된 직후부터 계속 굳은 표정으로 방청석 쪽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계속 방청석을 샅샅이 훑어 내려갔다. 눈빛에선 절박함마저 묻어나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시선이 한 군데로 고정됐다. 지혜의 시선이 멈춘 곳은 다름 아닌 연인인 재필이 서 있는 곳이었다.

 

 재필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지혜를 쳐다보고 있었다. 재필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뒹굴며 죽어갔다. 그들의 죽음의 몸짓들 사이로 서로를 쳐다보고 있던 둘의 눈동자가 비 오는 날의 견우성과 직녀성처럼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지혜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다 뭔가를 말하려는 듯 달싹였다.

 

 미・안・해…….

 

 하지만 가슴 속에서부터 북받쳐 올라오는 감정의 파도가 숨을 틀어막고 그 목소리마저 도로 목구멍 안으로 집어삼켜 버렸다. 지혜는 끝내 재필을 계속 쳐다보고 있지 못한 채 그만 고개를 옆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재필은 처음엔 당장 죽을 위기에 처한 자신을 발견하고도 우두커니 서서 보고만 있는 지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곧 지혜의 눈동자와 입술에서 전해지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끼고는, 왠지 모르게 비로소 모든 것을 체념할 수가 있었다.

 

 그 순간 길고 날카로운 칼날이 재필의 오른쪽 옆구리를 꿰뚫었다. 재필은 “헉!” 하는 외마디 날숨을 내뱉으며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끝까지 지혜를 놓치지 않았다.

 

 재필의 눈동자가 차츰 초점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재필 주변으로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계속해서 쓰러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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