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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생각시의 살인교사
작가 : 기쁨을아는몸
작품등록일 :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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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배니싱 트윈(Vanishing Twin) - ⑤
작성일 : 17-11-25     조회 : 377     추천 : 0     분량 : 5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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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배니싱 트윈(Vanishing Twin) - ⑤

 

 

 “에?”

 

 화림은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곧 얼굴이 굳어져버렸다.

 

 “헉!”

 

 웬 차갑고 날카로운 것이 화림의 등을 꿰뚫었다. 그 순간 화림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이내 눈웃음을 짓는 것처럼 가늘어졌다.

 

 “빌어먹을……, 왜 난 그 꼬맹이처럼 안 되는 거야…….”

 

 화림은 그러고는 앞으로 풀썩 고꾸라졌다. 등에 꽂혀 있는 건 화림이 조금 전 매점 카운터에 놓고 왔던 바로 그 칼이었다. 철훈은 쓰러진 화림을 뒤에서 내려다보며, 마치 정신 줄을 놔버린 사람처럼 괴상한 소리로 마구 웃어댔다.

 

 “히히, 이히히, 이히히히! …….”

 

 학현은 그 즉시 철훈을 가리키며 고함을 쳤다.

 

 “저 새끼 죽여 버려요! 당장!”

 

 이에 사람들은 순식간에 달려들어 철훈을 마구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학현은 곧바로 달려가 화림을 부축했다.

 

 “이봐, 괜찮아?”

 

 화림은 학현을 바라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참, 내 인생은 끝까지 이리도 볼품이 없네…….”

 

 “약한 소리 하지 마! 당장 의무실로 가자!”

 

 학현은 그러면서 화림을 들쳐 업으려 했다. 하지만 화림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쿨럭 쿨럭 …… 그만 둬. 소용없어. …… 저 새끼가 꼴에 …… 지도 의사였다고 …… 심장을 정확히 …… . …… 제기랄, 콜록콜록 …… 그 대신 …….”

 

 그러더니 자신이 들고 있던 빵과 주스 등이 담긴 비닐봉지를 학현에게 내밀었다.

 

 “이것 좀 …… 동원 씨한테 전해 줘.”

 

 학현은 비닐봉지를 받아들며 다시 물었다.

 

 “당신 정말 이대로 괜찮겠어? 고집 피우지 말고 의무실로 가자. 살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나 화림은 입가로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덤덤하게 말했다.

 

 “그냥 나 편히 누울 수 있게 …… 등에서 칼이나 좀 …… 빼줄래? 콜록콜록 …….

 

 학현은 망설여졌다. 이 상태에서 칼을 뽑으면 출혈로 금방 죽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살 가망이 거의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이건 화림의 마지막 유언 같은 것이기도 했기에 막무가내로 계속 거부하는 것 또한 도리가 아닌 듯싶었다.

 

 망설임 끝에 학현의 오른 손이 천천히 화림의 등에 꽂혀 있는 칼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칼 손잡이를 살며시 그러쥐었다. 학현은 그 상태에서 다시 한 번 화림의 얼굴을 바라봤다. 화림은 ‘괜찮아.’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학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마침내 손아귀에 힘을 꽉 준 다음 칼을 뽑아냈다. 순간 화림의 입가로 나지막한 신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윽…….”

 

 칼을 빼낸 상처에서는 곧바로 피가 철철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화림은 처음에만 잠깐 인상을 찌푸렸을 뿐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러더니 잠시 후 오히려 평안해 보이기까지 하는 얼굴로 학현에게 말했다.

 

 “이제 됐어. …… 나 눕혀주고 …… 그만 동원 씨한테 가.”

 

 학현은 시키는 대로 화림을 천천히 바닥에 눕혔다. 마침 철훈도 계속 몽둥이질을 당한 끝에 막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철훈의 죽음을 확인한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화림이 누워 있는 쪽을 바라봤다. 예쁜 얼굴 탓인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죽었을 때 보다 괜히 더 마음이 안쓰러웠다. 지금까지 철훈을 죽인다고 소란을 피웠던 게 다 미안해질 정도였다. 결국 그들은 화림에게 방해라도 될 세라 조용히 줄을 지어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나가면서도 절로 화림에게 한 번씩 눈길이 가는 그들이었다.

 

 화림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져갔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표정은 안식을 찾아가는 것처럼 점점 환하게 피어났다. 학현은 그런 화림이 문득 더 가엽게 느껴졌다. 그래서 조용히 뺨을 어루만지며 마지막 가는 길을 빌어주었다.

 

 “다음 생에도 지금하고 쌍둥이처럼 꼭 닮은 예쁜 모습으로 태어나. 대신 더 행복한 운명을 타고 나는 거 잊지 말고.”

 

 의식이 점점 아득해져가고 있던 화림은 가만히 학현의 말을 듣고 있다 불현듯 머릿속으로 한 생각이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화림은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던 학현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배니싱 트윈 …… 콜록콜록 …….”

 

 학현은 어리둥절했다.

 

 “뭐? 그게 뭔데?”

 

 화림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동원 씨한테 전해줘 …… 최면 때 본 건 배니싱 트윈에 대한 기억때문일지도 모른다고 …… 콜록콜록 …… 그허억, 컥!”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화림은 심장에서 터져 나온 피가 한꺼번에 목구멍으로 쏟아져 나와 연신 기침을 해대며 괴로워하더니 끝내 숨이 멎고 말았다.

 

 학현은 얼떨떨했다. 하지만 계속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이에 미처 감기지 못한 화림의 눈을 손으로 감겨준 뒤, 화림의 부탁인 비닐봉지와, 또 그녀의 유품이나 마찬가지인 칼을 집어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화림이 편히 잠들 수 있도록 식당의 불을 모두 꺼준 다음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 § -

 

 

 의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 학현이야. 들어갈게.”

 

 그러나 학현은 바로 문을 열지 않고 잠시 뜸을 들였다가 들어왔다.

 

 “승희는 어때?”

 

 “피곤했는지 잠들었어요.”

 

 “그래?”

 

 승희는 그 정도 움직인 것도 많이 힘들었는지, 아니면 자기가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느라 마음이 힘들었던 건지 지친 얼굴로 새근새근 잠이 들어 있었다. 학현은 그러고 있는 승희가 못내 가여워 가슴 한 쪽이 아려왔다. 동원이 학현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학현은 그제야 화림이 부탁한 비닐봉지를 동원에게 내밀었다.

 

 “이거.”

 

 봉지 겉에는 군데군데 피가 묻어 있었다. 동원은 왜 그런 걸 자기한테 주나 싶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러다 안에 먹을거리가 들어 있는 걸 보고 그것이 원래 화림의 것이었음을 직감했다. 동원은 학현을 쳐다봤다.

 

 “이건?”

 

 “아까 직원 식당에서 화림 씨가 너 주라고 부탁했던 거야.”

 

 동원은 순간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그럼 화림 씨는요?”

 

 “…… 죽었어.”

 

 “네?”

 

 동원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머리를 막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그때 꽃님이만 데려오지 않았어도……으으으…….”

 

 그러다 문득 승희에게 눈길이 갔다. 승호가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 지금, 아니 승호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현 상황에서 자신이 죽거나 했을 때 승희를 누구에게 부탁해야 할 지 불쑥 걱정이 앞섰다.

 

 동원은 학현을 쳐다봤다. 학현이 비록 거칠고 다혈질이긴 했지만 승희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한번 정한 목표는 어떻게든 악착같이 해내고야 마는 그 성격 또한 지금같이 큰 위험에 처해있을 땐 무엇보다도 중요한 소양이었다. 더군다나 학현은 어찌 보면 동원 자신과 원수와도 같은 사이였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자신을 노리며 다가오는 꽃님의 관심 밖에 있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굳이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승희가 학현을 무서워한다는 것이었지만, 아까 대표실에 갔을 때의 분위기로 봐서는 그 또한 차츰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마침내 마음을 정한 동원은 학현에게 말을 꺼냈다.

 

 “선배.”

 

 “왜?”

 

 “선배, 승희 좋아하는 마음 바뀌지 않았죠?”

 

 “어?”

 

 학현은 살짝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동원은 개의치 않고 계속 물었다.

 

 “승희가 앞으로도 저대로 나을 수 없다고 해도 계속 지금처럼 좋아해줄 자신 있죠?”

 

 물론 학현의 마음은 그랬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그걸 딴 사람도 아닌 동원 앞에서 이렇게 갑작스럽게 드러내고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동원은 비록 학현이 망설이며 대답을 못하고 있었지만 그 얼굴에서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저 어쩌면 여기서 못 나가고 죽을 지도 몰라요.”

 

 “뭐? 갑자기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하지만 동원은 어차피 자기도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고 확신도 서지 않는 내용을 일일이 설명하기가 좀 그랬다.

 

 “그냥 그런 게 있어요. 아무튼 내가 잘못 되면 선배가 승희를 책임지고 끝까지 돌봐줘요. 그럴 수 있죠?”

 

 “그야 그게 …….”

 

 학현은 여전히 우물쭈물했다. 그러나 동원은 학현이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리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 제대로 표정 관리가 안 되고 있는 학현의 얼굴 자체가 바로 그 증거나 다름없었다. 동원은 조용히 돌아서서 잠들어 있는 승희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혹시 나중에 내가 없더라도 놀라지 마. 학현 선배가 널 잘 돌봐줄 거야. 알았지? …… 학현 선배는 원래 좋은 사람이야. 내가 말이지, 너도 잘 알다시피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진 찌질이 왕따 같은 애였잖아? 그런데 막 입학하고 나니까 선배가 갑자기 나한테 어깨동무를 딱 하는 거야? 그러더니 ‘이봐, 넌 딱 풍물패 스타일이야. 우린 너 같이 소심한 녀석들을 개조하는 게 전문이거든!’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얼떨결에 풍물패에 들어갔는데 거기가 원래 데모대 소굴이잖아? 덕분에 사흘이 멀다 하고 시위대에 휩쓸려 잡혀갈 뻔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그때마다 선배는 언제나 날 구하러 와줬어. 싸움 실력 하난 확실했거든. 그치만 선배 말대로 내 성격도 많이 고쳐져서 그 덕에 너한테 고백할 용기를 낼 수 있었어. 나중에 내가 너랑 사귀는 바람에 선배가 갑자기 무서운 사람이 돼버리긴 했지만, 내가 없어지게 되면 선배는 다시 예전의 다정한 사람으로 돌아올 거야. 그러니까 너도 나랑 사귀기 전의 선배의 모습을 떠올려 봐. 그럼 그동안 쌓여있던 마음의 벽도 금방 허물어지게 될 거야. 알았지?”

 

 한편 그러는 사이 아무도 보는 이가 없는 밀실에서 동원이 무방비 상태로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을 계속 보고 있던 학현은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시커먼 속내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리하여 곧바로 숨을 죽인 채, 승희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동원의 등 뒤로 조용히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와 동시에 재킷 속주머니에서 작은 칼 하나를 소리 없이 꺼내 들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조금 전 직원 식당에서 주워 온 화림의 칼이었다. 곧 둘 사이의 거리는 팔만 뻗으면 바로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학현은 나머지 한손으로 칼집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막 칼을 칼집에서 뽑으려던 찰나, 문득 등 뒤쪽에서 인기척을 느낀 동원이 뒤를 돌아봤다. 학현은 화들짝 놀라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엉겁결에 칼을 동원 앞에다 쑥 내밀었다.

 

 “이, 이거 …….”

 

 동원은 갑작스러웠지만 곧 그 칼을 알아봤다.

 

 “이거 화림 씨 칼이잖아요?”

 

 그러면서 칼을 덥석 받아들었다. 학현은 뭐라 둘러댈 말이 생각이 안 나 우물거렸다.

 

 “어? 응, 그게 …….”

 

 “화림 씨가 남긴 유품이군요? 고마워요. 제가 잘 간직할게요.”

 

 “그, 그래…….”

 

 “혹시 화림 씨가 남긴 다른 말 같은 건 더 없었어요?”

 

 학현은 그 순간 화림이 동원에게 전해달라던 말이 떠올랐다.

 

  - 배니싱 트윈 …….

 

 그러나 어쩐지 동원에게 그 말을 전해주기가 망설여졌다. 그 말에 어떤 특별한 의미라도 있는 것인지는 금방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화림이 죽기 직전에 그리 다급하게 부탁한 걸 보면 뭔가 동원에게 크게 도움이 될 만한 말임은 틀림없어 보였다. 그리하여 고민 끝에 결국 다른 말을 둘러댔다.

 

 “아니, 아무것도 없었어. 화림 씨는 상처 때문에 제대로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

 

 “그랬군요…….”

 

 학현은 더 이상 동원과 이대로 마주하고 있는 게 거북해졌다.

 

 “그럼 난 이걸로 화림 씨 부탁은 확실히 전했으니 다시 의원들 찾으러 나갈게. 중간중간 승호도 살펴야 하니까.”

 

 동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럼.”

 

 학현은 곧바로 허둥거리며 의무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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