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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저마다 시대를 잘못 만났다(부제: 난세살이)
작가 : 박은혜
작품등록일 :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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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군복무를 33개월만 해도 되는 행운을 잡으셨다 (1)
작성일 : 18-12-31     조회 : 173     추천 : 0     분량 : 7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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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관문. 우리가 그 시대에 만났던 군대

 

 # 아빠는 군복무를 33개월만 해도 되는 행운을 잡으셨다 (1)

 

 “정부는 21일, 육군 군 복무기간을 내년 2월 27일 입대자부터 21개월로 확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참여정부 ‘국방개혁 2020’에 따라 육군·해병대 복무기간이 2014년 7월까지 24개월에서 18개월로 점진적으로 단축될 예정이었으나, 이번 발표에 따라 복무기간 6개월 단축계획이 3개월 단축으로 수정되었다고…….”

 

 잘 들리지도 않던 뉴스가 그날따라 또박또박 들렸다. 뉴스 리스닝 실력이 이 정도일 줄이야. 일기예보를 제외한 웬만한 뉴스는 한귀로 흘려버리는데, 이 뉴스는 대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계속 맴돌았다. 3개월……. 3개월이 줄다니. 비보였다. 2010년이 그래도 잘 마무리 되는 줄 알았는데 연말에 이런 소식을 접했다.

 

 물론 잘 안다. 누군가에게 축복이라는 것도 잘 안다. 내년 2월 27일 이후 입대자들에게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하고 싶다. 정말이다. 진심이다.

 하지만 비통하다. 3개월……. 누군가는 비웃을지 모른다. 1년도 아니고 고작 3개월 가지고 왜 오바하냐고 할지 모른다. 만 2년 꼬박 군복무 잘 마치고 왔으면 되었지, 뭘 그런 것 가지고 유난을 떠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3개월이, 누군가에게 아무렇지나 않게 지나갈 그 3개월이, 우리에게는 더없이 소중하고 존귀했던 3개월이었다. 민간인으로서는 짧디 짧은 그 3개월이 군인에게는 도무지 흐르지 않는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그 3개월의 차이로 누군가는 입사에 실패할 수도 있고 그 3개월의 차이로 누군가는 자기개발에 실패할 수 있다. 그 3개월의 차이로 누군가는 사랑하는 애인을 잃을 수도 있으며 그 3개월의 차이로 누군가는 건강을 잃을 수도 있다. 그냥 그 3개월이 우리에게는 소중한 기회였다. 예외 없이 그랬다.

 

 마침 겁도 없이 동아리 선후배로 알고 지내던, 아는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형. 뉴스 봤어요? 3개월 단축이래요. 난 6개월 줄어들 줄 알았는데……. 저 몇 년 더 기다렸다가 가는 게 낫겠죠? 그 사이에 혹시라도 6개월로 단축되면…….”

 “야! 임마. 끊어.”

 

 내뱉는 소리라고 하는 게 고작……. 일부러 약을 올리러 전화를 한 건지, 그냥 눈치가 없는 건진 모르겠다. 확실한 건 앞으로 그에게 호형호제를 허하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앞으로 ‘형, 형’ 이래만 봐라. 선배님, 선배님이라고 부르게 해야지.”

 

 애꿎은 동생에게, 아니 후배 녀석을 향해 혼잣말로 화풀이를 하고 있는데 뒤돌아보니 아빠가 계셨다. 분명 아까부터 계셨는데 이제야 존재감이 느껴졌다. 간만에 아빠의 얼굴을 보았다. 사실 같이 살지만 아빠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은 많지 않다. 보긴 보는데 얼굴을 본 적은 정말 오랜만이다. 분명 방금 전에 저녁도 같이 먹었는데.

 정말 간만에 아빠 얼굴을 보니 의미심장한 표정이었다. 뭔가, 죄송해졌다. 33개월 군복무를 하신 아빠 앞에서만큼은 일단 밀려오는 분노를 눌러야 할 것 같았다.

 

 아빠는 78년도에 입대하셨다. 아빠는 군입대 준비를 하면서 자신은 행운아라는 말을 줄곧 하셨다고 한다. 아빠가 군입대를 하기 전, 군복무 단축이라는 전례 없는 복이 굴러들어왔기 때문이다.

 사실 그 이전까지는 단 한 번도 군복무 기간이 조정된 적이 없었다. 그 시절 그 어르신들은 그냥 36개월 내내, 만 3년간 복무했다. 그러다가 아빠가 입대하기 1년 전, 77년에 3개월 단축되었다. 뭐, 잉여자원 해소에, 산업기술 인력 지원 등의 이유로 그랬다지만, 한간에선 유신 체제 내 지지자 확보를 위한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이유야 어떠하든 아빠에게는 그 자체가 축복이었다. 아빠에게는 이유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기간이 중요했다. 그 소식을 듣고 자신을 1956년에 낳으신 어머니에게 그토록 감사했을 정도라고 했다. 그 단축 결정이 자신을 위해 예비 된 선물이라 믿으셨던 셈이다.

 

 군복무 기간 단축이 결정된 그날, 아빠는 스스로가 행운아라며 자취방 화장실에서 몰래 웃음을 지으셨다고 했다. 차마 자취방 안에서는 웃으실 수 없었다. 그 방 안에는 36개월, 만 3년을 꼬박 보내고 온 룸메이트 복학생 선배가 떡하니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날, 그 선배는 술을 꽤나 퍼마시며 종일 울어재꼈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그 옛날 그 어르신들은 예의도 바르셨다. 꼭 우리 아빠라서가 아니라, 그냥 그 시절 어르신들은 배려란 것을 하실 줄 알았던 것 같다. 군복무 단축 소식에 겉으로 웃음을 보이지 않으시고 선배 몰래 나와서 슬쩍 웃으셨던 아빠의 모습. 좀 전에 아무렇지 않게 전화해서 하소연하며 속을 긁던 후배 놈과는 격이 다르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요즘 애들은 너무 버릇이 없어 걱정이다.

 

 아빠의 과거를 떠올리니, 흥분이 조금 누그러졌다. 24개월……. 그래도 그 정도면 낫지 않은가. 우리 할아버지는 36개월은 아빠는 33개월을, 외삼촌은 26개월을 복무했으니.

 돌아보면 나도 수혜자였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2개월이 단축이 되었으니……. 아니 생각해 보면, 저마다 수혜자다. 77년 이후 군입대자들은 다들 군복무 단축의 은총을 입은 셈이다.

 

 그때 뉴스에서 관련 보도가 이어져 나왔다. 이번 단축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인터뷰들이 하나씩 보도되고 있었다.

 

 “한국국방연구원의 연구결과, 보병이 숙련도를 갖추려면 최소한 1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리는데요. 그런 면에서 볼 때 21개월로의 단축은 충분히 합당하다는…….”

 

 어이가 없네. 그걸 이제야 알았단 말인가? 이전에 입대한 사람은 16개월로 부족했단 말인가? 운동신경에 근성마저 뛰어난 나는 1년도 안 되어서 충분히 주특기를 익힐 수 있었는데 말이다. 지난 일이니 잊고 싶었지만 도무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 수혜자라고 믿었던 생각을 취소했다.

 

 마침 아빠는 소파에서 일어서면 한 마디 하셨다.

 

 “나는 간만에 주한이랑 술이나 마셔야겠다.”

 

 술 이야기만 나오면 잔소리를 퍼붓는 엄마가 웬일로 가만히 계신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주한이랑 식사나 해야겠네. 연말도 되었고. 날 잡아 봐요.”

 “그러지 뭐.”

 

 연말에는 꼭 주한 아저씨와 식사를 했기에 지금 이 상황이 어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술 마시러 간다는 아빠에게 프리패스를 건네는 엄마의 모습은 조금 의아했다. 아빠는 아주 가끔, 정말 가끔 반주를 즐기시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이러다 우리 목사님이 아시면 어쩔 거냐.”며, 문을 열고 아빠가 나가실 그때까지 같은 소리를 반복하신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주한 아저씨에게 순순히 보내드렸다. 심지어 다음에 다 같이 만나 식사까지 하자니…….

 

 문득 엄마가 그 아저씨에게 관심이 있나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식사 약속까지 잡자고 말씀하시다니! 참고로 주한 아저씨는 엄마와 동갑이며 아직 결혼을 안 하셨다. 혹시나 했지만 그러기에는 주한 아저씨의 비주얼이 걸렸다. 아무래도 이상한 상상은 더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혼자 막장 스토리를 쓴 게 미안해서인지, 엄마에게 아무 말이나 걸었다. 엄마는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내 입장에서는 어떤 말이라도 걸어야 덜 미안해질 것 같아서였다.

 

 “엄마, 근데 주한 아저씨랑은 언제부터 친한 거야? 아빠랑 나이 차이도 많이 나잖아. 직장 동료도 아니고, 대학 친구도 아니고, 집도 멀고.”

 “음. 뭐. 그렇지.”

 

 뭐가 그렇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차피 의미 없이 내뱉은 질문이라 대답이 어떠한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얼버무리는 엄마가 의심스러웠다. 정말 뭔가 있나 싶었다.

 

 ‘엄마랑 나이도 같은데, 혹시 옛날에 만나던 애인인가? 그런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관계가 꼬여서 이렇게 되었나? 아니지. 그렇다면 아빠와 저렇게 친해질 리는 없고……. 그게 아니면 뭐지?’

 

 그러고 나니 더 궁금해졌다. 그렇게 관심 있는 분도 아닌데 괜히 궁금해졌다. 괜히 엄마와 그 아저씨를 엮어가는 내 자신이 한심했지만 그래도 한 번 더 물어보았다.

 

 “아니, 그러니까 어떻게 친하냐고…….”

 “아휴. 뭐가 그렇게 궁금하셔?”

 

 내가 왜 묻는지 영문을 모르시는 엄마는 오징어나 구워먹자고 하셨다. 오징어를 구워먹자는 것은 같이 마주보고 앉자는 말이기도 하다. 이것은 곧 할 말이 있음을 의미했다. 진짜 뭔가 있구나 싶었다. 특히나 오징어를 함께 앉아 질겅질겅 씹는다는 것은 이야기하는 데 꽤 긴 시간이 소요됨을 암시한다. 내가 예상한 막장 스토리는 아닐지라도 뭔가 사연은 있어 보였다.

 오징어를 뜯어주시며 엄마는 대뜸 아빠의 군대이야기를 늘어놓으셨다. 내가 상상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전개였다.

 

 아빠는 33개월 군복무 단축이 결정된 이후, 입대 전부터 ‘자신은 행운아’라며 기뻐하셨다고 했다. 사실 여기까지는 나도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입대하는 순간부터 상상하기 힘든 시간들이 이어졌다. 여기서부터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논산훈련소를 거친 뒤 아빠가 간 곳은 전방부대였다. 일단 생각보다 처참했고 상상보다 비극적이었으며 추억으로 미화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빠는 그런 현실과 마주했다.

 입대 후 맞이하는 첫 겨울이 오자, 이전의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침 타이밍 적절하게 2차 오일쇼크까지 일어났다. 78년 12월, 이슬람 혁명이니 뭐니를 외치며 이란이 석유를 더 안판다고 했다. 무슨 심보인지, 그 덕에 기름값은 아주 제대로 치솟았다. 사실 아빠는 이미 고등학교 때 1차 오일쇼크를 겪어본 터라, 그래도 이번 역시 견딜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심지어 군대에서는 뭔가 나라의 보호 아래 등 따숩게 잘 지내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는지를 증명하듯, 1차와는 비교도 못할 정도로 2차 파동은 우리나라에 큰 타격을 줬다. 군대라고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그 시기 철책근무를 서본 사람은 이후 어떤 추위도 추위로 인정하지 않게 되었는데, 아빠가 역시 그중 한 분이셨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아빠는 군복무기간이 33개월로 줄어서 겨울을 2번만 지내면 된다는 생각에 감사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자신이 여기서 불평을 하면, 3년을 꼬박 군대에서 보내며 겨울을 세 번이나 지낸 선배들께 도리가 아니라 여기셨던 것이다.

 

 추위나 환경만큼 아빠를 더 괴롭혔던 것은 노동이었다. 철책 근무 기간이 끝나고 조금 나아지나 싶었지만 그때부터 노동이 시작되었다. 아빠를 비롯한 장병들은 구보로 산에 올라가 진을 치고 철책에 쓰일 철조망을 만들어야 했다. 과연 요즘 아이들은 알기나 할까? 그 철조망이 기계로 만들어진 철조망이 아니라 모두 ‘수제’ 철조망이라는 것을?

 그나마 철조망 작업은 나았다. 주로 밤에 하는 벙커 만드는 작업은 몸 자체를 으스러지게 했다. 철조망 작업이 손이 남아나지 않은 일이라면 벙커 만드는 일은 몸이 남아나지 않는 일이었다. 한 번 시작하면 쉴 수도 없었다. 그놈의 시멘트가 굳어버리기 전에 작업을 모조리 끝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아빠는 원망하지 말자고 다시 되뇌었다. 목책에서 철책으로 바뀌던 시기에 군대에 들어간 60년대 선배 군인들을 떠올리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리라 생각하셨던 것이다.

 

 아빠가 겪은 일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비인격적인 대우였다. 신병이 된지 일주일 후, 침상 밑에서 맨 손으로 밥을 먹으라는 황당무계한 명령에 적잖게 당황한 것도 모자라, 한 달 뒤에는 밥을 먹는데 갑자기 선임하사가 의문의 구령을 외쳤다,

 “동작 그만. 가스!”

 뭔 소린가 싶었는데, 다들 먹던 밥을 내려놓고 식탁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게 아닌가. 조금이라도 동작이 느리면 안 되었기에 밥이 쏟아지고 국이 엎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음식이 식탁 사이로 떨어져 얼굴에 묻는 것 정도 역시 자연스런 일이었다. 분명히 굴욕적인데 조금도 굴욕적으로 느껴서는 안 될 분위기였다.

 그러다 ‘해제’를 외치면 그제야 다시 밥을 먹을 수 있는데 식탁에 떨어진 밥알을 주워 먹다 보면 실존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밥을 안 먹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아빠는 서러워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자율배식의 은혜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반찬도 3식이다. 아빠가 고등학생 때만 해도 군대에서는 반찬도 1식이었고 정량에 못 미치는 양을 배급받아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다. 그 시절 간부들이 식량을 빼돌려 팔아먹어 그렇게 된 것이라,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고 했다.

 

 비인격적인 모습 중에서도 아빠를 가장 괴롭혔던 것 이간질 유도였다. 강한 정신력을 가진 아빠인데, 그 아빠가 보초 근무를 서다가 새벽에 아주 잠깐 졸고야 말았다. 그 시절, 군대에서 잠깐 조는 것은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냥 중범죄다. 그곳에선 그랬다. 그 덕에 취침 중이던 모든 내무반 식구들이 아빠 덕에 아직 깜깜한 새벽에 기상하여 구타를 당해야 했다. 그 순간만큼은 아빠는 내무반 식구들로부터 북한군보다 미운 적이 되어버리고 만다. 물론 분대장이 유난히 악질이었다고는 하나, 다른 곳이라고 덜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아빠는 힘들어해서는 안 된다고 되뇌었다. 몸은 힘들지만 힘들다는 의식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들 그 기간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왔으니까. 대한민국의 남자들이 다 그렇게 이 기간을 보냈는데 자신이 뭐라고 그런 고통을 호소하나 싶으셨던 것이다.

 

 그렇게 아빠는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셨다.

 

 ‘지뢰사고가 없는 게 어디야.’

 ‘구타당하다가 머리가 안 깨진 게 어디야.’

 ‘밥이라도 먹을 수 있는 게 어디야. 과거에는 정량도 못 먹었다며.’

 ‘안 죽은 게 어디야.’

 ‘33개월로 줄어든 게 어디야.’

 

 그러나 이것이 화근이었다. 그 상황을 힘들어하면 안 된다고 여긴 것이 최대의 실수였고 교만이었다. 아빠는 매번 ‘군복무 단축 이후에 입대를 한 자’로서 더욱 이 상황에 감사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원망하는 것은 이전에 3년을 꼬박 채운 분들께 도리가 아닌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 듯 되뇌었다. 그렇게 다들 겪는 일이라는 것, 33개월로 줄었다는 것에 매번 포커스를 맞추며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를 외쳤다.

 그놈이 33개월이 뭐 길래, 그게 대체 얼마나 큰 은혜이기에 아빠는 그토록 감격에 겨워하셨던 것인지…….

 

 그렇게 아빠는 감정을 꾹꾹 눌러 담다가 제대로 병이 났다. 몸의 병은 치료라도 하면 되는데 정신적인 병은 해결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이런 병은 말한다고 해도 안 먹힌다. 증상이 안 보이는데 말한다고 어디 들어줄 사람이 있겠는가. 그야말로 공황상태가 되어 지옥 같은 하루를 보내야 했다. 차라리 힘들어하고, 원망도 하고, 신세 한탄을 하면 걸리지 않았을지 모를 병이었다. 그러나 억지로 받아들이려고 하니 그게 문제가 터질 수밖에 없었다. 다들 견뎠으니 나도 아무 소리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견뎌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을 완전히 망가뜨려놓았다.

 ‘늘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마인드, ‘대한민국 남자로서 다 감내해야 한다’는 근거 없는 책임감이 아빠를 그 상황에 이르게 만들었다. 물론 그 마인드를 제공한 것은 아빠가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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