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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저마다 시대를 잘못 만났다(부제: 난세살이)
작가 : 박은혜
작품등록일 :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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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직도 군대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
작성일 : 18-12-31     조회 : 174     추천 : 0     분량 : 6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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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아직도 군대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

 

 그녀에게는 두 살 어린 동생이 있었다. 남동생이었다. 양아버지와 양아버지에게 딸린 오빠가 집안으로 들어오면서 남동생은 그녀에게 더없이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남동생은 그녀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아끼고 좋아하는 ‘남성’이었다. 가족을 버린 아빠, 그리고 그 자리에 들어온 새 아빠, 그 새 아빠의 아들에게 받은 상처로 남성에 대한 혐오가 극대화되었지만, 남동생만큼은 달랐다. 그는 유일하게 지켜주고 싶은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남동생은 남자다. 이 말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군대를 가야함을 의미한다. 나와 같은 처지였다. 2007학번이던 그녀의 동생은 내가 제대한 뒤에 입대했다.

 그녀의 동생은 그녀를 닮아서인지 꽤 당돌하고 당찬 사람이었다. 이등병 시절, 자대배치를 받았을 때 그는 내무반 장병들을 보고 안심할 수 있었다. 후임병을 괴롭히는 선임병은 없는 듯 했다. 행운이었다. 분명 군대치고는 꽤 친절한 분위기였다. 특히나 그녀를 닮아 훤칠하게 잘 생긴 덕인지, 우락부락하게 생긴 동기들보다는 조금 더 대우받으며 지낼 수 있었다. 남자들 세계에서도 외모나 이미지가 중요했다. 고등학교 때나 대학교에서도 어느 정도 외모 덕을 보았는데, 여기서도 그 덕을 보는구나 싶어 괜히 뿌듯했다.

 

 찬바람을 맞으며 입대했던 그녀의 동생에게도 봄은 찾아왔다. 추위가 완벽하게 가신 2008년 5월. 그녀의 동생이 가장 좋아했던 5월이 군대에도 어김없이 스며들었다. 한겨울의 강추위도, 초봄의 꽃샘추위도 거뜬하게 이겨내며 복무하던 그에게 5월은 사실상 별 게 아니었다. 운동신경까지 탁월한 그에게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이제 본격적인 봄이 되어서 몸과 마음 모두 안심이 되었다. 물론 마음 한편에선 곧 다가올 여름에 대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몰려오긴 했지만 말이다.

 

 ‘군대에서 여름을 버텨야 한다니 생각만으로도 암담하다. 더운 건 진짜 싫은데. 땀에 찌들어가며 훈련받을 거 생각하면…….’

 

 유난히 깔끔했던 그녀의 동생에게, 땀범벅이 되어가며 훈련을 받을 여름은 고난 자체였다. 겨울에는 “곧 봄이 오겠지.” 라는 생각으로 버텼는데, 정작 봄다운 봄이 오니 “곧 여름이 오겠구나.” 하면서 우울해졌다.

 물론 고민할 여유는 금세 사라졌다. 여유로운 5월도 군인들에게는 여전히 바쁜 5월이었다. 2008년 어린이날을 맞아, 부대 개방 행사를 열어 지역 어린이와 그 가족을 초청한다고 했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도전을 심어주고 안보 의식을 가르치기 위한’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굳이 군대에까지 초대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만큼 준비해야 할 일은 늘어나니까.

 문제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언론에도 보도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안 정치인들도 방문한다고 했다. 어린이날 행사면 당사자인 어린이와 가족만 초대해야지, 굳이 정치인들은 왜 오냐며 저마다 투덜거렸다. 그만큼 닦고 치우고 정리할 것은 늘어난다. 귀여운 어린이들은 기꺼이 반겨줄 수 있지만, 정치인들을 생각하니 사기가 떨어졌다. 군 사기 진작을 위해 부대를 방문한다는 정치인들은 정작 자신들 때문에 군인들의 사기가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제대로 군 복무 한 사람이 많지 않으니 모를 테지. 물론 아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필요해서 오는 걸 보면, 그게 더 나쁜 것 같다.

 

 행사 당일, 오전 내내 어린이들을 위한 행사가 진행되었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식사 시간이 되었을 때, 중대장은 갑자기 그녀의 동생을 불렀다.

 

 “서이병! 이리 와봐.”

 

 그는 쏜살같이 달려갔다.

 

 “이병! 서한…….”

 

 관등성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중대장은 급한 듯이 말을 끊으며 이야기했다.

 

 “네가 이등병 대표로 박수혁 의원님 옆 자리에 앉아 식사한다. 알겠나?”

 

 소문에 의하면 내무반에서 그녀의 동생 비주얼이 제일 괜찮았기 때문에 뽑았다고 했다. 이왕이면 잘 생긴 이등병이 앉아있어야 부대 분위기도 좋아 보이지 않겠나.

 그녀의 동생 입장에서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냥 옆에 앉아 밥만 잘 먹으면 된다. 아주 맛있게.

 

 5선인 박의원은 후배인 사단장과 함께 식판에 밥을 담은 후 착석했다. 그녀의 동생은 박의원 바로 옆에 앉았다. 조금도 떨리지 않았고 시킨 대로 밥만 잘 먹자고 되뇌었다. 카메라 플래쉬 소리가 계속 났다. 카메라를 의식했는지 박의원은 바로 옆에 있는 그녀의 동생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물론 궁금하거나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친근함을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일 뿐이었다. 어차피 카메라가 물러가면 더 안 물어볼 거라, 잠깐 대화하는 척 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군 생활, 할 만 한가?”

 

 그녀의 동생은 아주 또렷하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좋습니다! 문제없습니다!”

 “군대 오니 기분이 어떤가?”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마침 플래쉬가 터질 때라 박의원은 만면의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동생이 가진 비주얼 때문인지 사진도 잘 나올 듯 했다. 옆에 있는 사단장도 만족스러워했다. 한편, 카메라가 계속 떠나지 않자, 박의원은 계속 형식적인 질문을 던졌다. 몇 분 후, 카메라 부대가 철수하기 시작했다. 박의원 입장에서도 “이제 됐구나.” 싶었다. 그런데 더 안 해도 될 질문을 굳이 더 했다. 억지로 쥐어짠 질문이 하나 남았던 것 같다.

 

 “군대에 바라는 건 없는가?”

 

 이 역시 형식적으로 그냥 던진 질문이었다. 높은 사람으로서 배려한다는 느낌으로 한 체면치레였다. 이제 각자 식사하고 돌아가면 오늘의 행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단계였다. 그런데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했다. 진담인지 농담인지, 그녀의 동생은 아주 또랑또랑하게 대답했다.

 

 “저희 부대에서는 미국산 소고기를 안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녀의 동생은 완벽한 악센트로 완벽한 딕션을 구사했다. 박의원은 당황했다. 덩달아 사단장은 사색이 되었다. 얼굴색이 변하는 게 한 순간이라는 것을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등병의 애교 섞인 농담으로 무마하기 위해 대대장이 나서려던 순간, 박의원은 수저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도 아무 말도 없이 나갔다. 카메라 부대는 모두 철수한 터라 상관없었다. 사단장도 뒤따라 나갔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대대장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당시,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산 소고기의 안정성 문제가 크게 대두되었고, 특히 광우병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그 논란을 수습하기 전에 정부는 소고기를 전면 개방하는 한미 소고기 2차 협상을 타결시켰다. 4월부터 일부 연예인과 학생을 중심으로 시작된 집회는 5월부터 전국의 시민을 중심으로 확대되었고, 공식 집회도 열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 사안은 매우 예민한 정치문제였다.

 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여당 5선 의원 앞에서 그녀의 동생이 한마디 한 것이다. 사실 박의원 소속이 여당인지 야당인지도 몰랐다. 그저 소원을 말하라고 해서 최근 이슈가 된 문제에 대해 말했을 뿐이다. 그것이 박의원을 모욕한 셈이다. 물론 그녀의 동생이 박의원을 한 방 먹이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군대에서 이등병이 시국을 비판할 이유는 없었다. 그저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서슬퍼런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대대장을 보고나자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힘 있는 정치인의 심기를 제대로 긁어놨으니, 대대장 입장에서 사단장에게 깨질 것은 명약관화였다. 이후 사단장이 따로 부르진 않았다. 하지만 아무 말도 없는 것이 더 무서웠다. 줄서기가 중요한 군인에게 있어서, 상급자의 눈 밖에 나는 것은 진급 누락은 물론이고 여러 면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어떻게 할 도리도 없었다. 감히 사단장을 찾아갈 수도 없으니 말이다. 대대장은 분노했고, 그 분노를 중대장에게 풀었다. 사단장이 아무 말 없었던 것처럼, 대대장 역시 새파란 이등병에게 직접 말할 짬밥은 아니었다.

 중대장 역시 날벼락을 맞았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이등병의 발언 때문에 부대 전체에 난리가 났고, 그 직속상관인 자신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쓸 판이었다. 물론 이 역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영창을 보낼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결국, 중대장은 그녀의 동생이 속한 소대를 가혹하게 굴리기 시작했다. 가장 힘든 작업에 매번 배치시켰고, 사소한 실수에도 얼차려를 줬다.

 분노는 계속해서 아래를 향했다. 같은 소대 선임병들도 자신들이 당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처음엔 걱정해주던 선임병들도 결국 폭발하기 시작했다. 어느 새 그녀의 동생은 왕따가 되어 있었다. 일종의 희생양이었던 셈이다. 그와 관련 없는 문제라고 해도, 부대의 모든 분노는 그녀의 동생을 향했고, 이등병으로서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이런 상황을 알 턱이 없었다. 어느 주말, 아무렇지 않게 엄마와 면회를 갔다. 참고로 엄마는 새 아빠와 이미 관계를 정리한 지 오래라, 가족은 엄마와 누나 둘뿐이었다.

 

 “서이병! 면회다.”

 

 면회 나가는 순간에도 눈치를 봐야 했다. 뒤에서 노려보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의 동생이 면회 장으로 들어서자 누나와 엄마가 보였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그 눈물은 단순히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었기에 어떻게 해서든 틀어막아야 했다. 하지만 이미 나온 눈물을 어찌 수습할지 몰랐다. 엄마와 누나에게 가기까지 남은 거리는 이십 여 미터! 최대한 천천히 걸어가면서 가는 동안 눈물을 얼른 삼켰다. 뛰어와야 마땅한 데 천천히 오는 동생을 보자 가족들은 살짝 당황했다. 자신들이 반갑지 않은가 잠시 의심까지 할 정도였다. 눈물을 삼키느라 그랬다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가 천천히 걸어오는 동안, 눈물은 말랐고 뜨거운 얼굴도 식었다. 다행히 엄마가 싸온 치킨은 아직 안 식었다. 그녀의 동생은 드디어 가족들 앞에 섰다. 아무렇지도 않게 가족들을 보려는데 다시 눈물이 나올 뻔 했다. 겨우 참아냈다.

 가족들이 준비한 음식을 먹으면서도 아무 맛이 나지 않았다. 치킨광이었지만 브랜드가 뭔지도 모를 정도로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동생은 꿋꿋이 그 치킨을 다 먹었다. 엄마와 그녀는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해했다. 그저 맛있게 먹는 줄로만 알았다.

 

 그것이 그녀의 동생이 마지막으로 먹은 치킨이었다. 세 가족이 모인 것도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화장실에서의 자살. 부대에서는 극도의 우울증 때문이라고 했다. 말도 안 되었지만 부검 결과 그 어떤 가혹행위의 흔적도 없었다. 그녀와 엄마는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상처 하나라도 있으면 가혹행위로 내세울 법하지만 단 하나의 증거도 없었다. 건강하고 당당했던 아이가 우울증에 걸릴 이유가 없다고 아무리 말해도 먹히질 않았다. 군대에서는 다 같은 말만 했다.

 실제로 중대장이나 고참이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 적은 없었다. 중대장이 그 소대만 힘든 작업을 배치시킨 것도, 배경을 모르면 뭐라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그녀의 동생은 걱정했던 여름을 비껴갈 수 있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5월에, 그의 생도 끝났다.

 

 진상을 알게 된 것은 그 해 여름 제대한 선임병에 의해서였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그는 그녀 집에 찾아와 자신이 아는 것을 털어놓았다. 그때부터 그녀는 동생을 잃은 상실감을 잊었다. 상실감이 아닌 억울함에 미친 듯이 쫓아다녔다. 그게 어디든, 억울함을 풀 수 있는 곳이면 찾아 갔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곳이 대통령소속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다. 휴학하고 열심히 발로 뛰기 시작했다. 위원회가 있으니, 뭐라도 동생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위원회에서는 사건을 해결할 의지가 없어보였다. 위원회 출범 후 정권이 바뀌자 자연스럽게 힘을 잃어 갔다.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이런 위원회가 존재하는 한, 언젠가 길이 열릴 거라고 믿었다. 대통령소속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자체가 해체되기 직전까지 말이다. 내가 그녀와 재회할 수 있었던 서명 운동도 이렇게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세히 알고 보니, 본래부터 해체 반대에 뜻을 두고 있던 정치학과 선배들이 그녀의 상황을 듣고 함께 서명운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대학에서 이런 운동을 펼친다 한들,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저 가만히 있을 수 없었기에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모든 이야기를 꺼내놓은 후 그제야 그녀는 눈물을 터뜨렸다. 이야기하는 내내 한 순간도 눈물을 글썽인 적이 없었다. 그랬던 그녀가 다 끝나고 울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 했다.

 

 “나는 군대가 남자들 이야기인 줄만 알았거든? 나랑 상관없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내 이야기더라고. 내 동생의 일이고, 나중에 내가 낳을 아들의 일이고. 그동안 왜 몰랐을까?”

 

 토론회를 상기하며 후회하는 듯 했다. 나는 그녀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잠시나마 “나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아 다행이다.”라며 안도했던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8년 후, 그녀는 정말로 아들을 낳았다. 그녀의 아들은 나의 아들이다. 그렇다. 내 아들 우림이가 그녀의 아들이다. 현재 그녀의 소원은 통일이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를 땐 이런 노래를 왜 배우나 싶었다던 그녀가 이제는 통일을 위해 기도한다. 아들이 군대에 가지 않으려면 그게 최선이라며 아주 간절히 기도한다.

 

 2018년에서야 대통령소속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부활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었다. 그녀, 아니 아내가 서명운동을 벌인지 거의 10년만이다. 그때 장모님과 아내의 감회는 남달랐다. 물론 위원회가 다시 부활한다고 해도 동생이 돌아올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소식을 접한 그날, 장모님은 10년 전의 일을 떠올리시며 눈시울을 붉히셨다. 물론 잊었던 것을 다시 떠올린 것은 아니다. 늘 머리로 생각하셨고 가슴에 담고 계셨다. 매순간 떠올렸고, 매번 떠올랐다.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장모님은 이 모든 일이 자기 때문이라며 우셨다. 돈이 많거나 권력이 있었으면 달라졌을 텐데. 미국 국적이라도 샀어야 했는데. 아무것도 못한 자신이 원망스럽다고 하셨다.

 

 군대 트라우마는 군필 남성에게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 남성의 가족에게도 트라우마는 평생 간직된다. 내 아내에게도, 장모님에게도, 이런 일을 당한 다른 모든 가족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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