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우리는 저마다 시대를 잘못 만났다(부제: 난세살이)
작가 : 박은혜
작품등록일 : 2018.12.31
  첫회보기
 
엄마는 애초부터 홀로서기를 못하게끔 설계되었다 (2)
작성일 : 18-12-31     조회 : 172     추천 : 0     분량 : 6416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엄마는 애초부터 홀로서기를 못하게끔 설계되었다 (2)

 

 문득 세 살 즈음의 기억이 하나 더 떠올랐다. 세 살 즈음, 엄마는 딱 한 번 나를 버리고 떠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가출인 줄 몰랐다. 그저 매일 보던 엄마가 처음으로 눈앞에서 사라지자 한 시간 정도 목 놓아 울었다는 기억만 난다. 만약 엄마가 장에 갔거나, 놀러갔거나, 머리를 볶으러 간 거라면, 당장 눈앞에 안 보여도 그렇게까지 울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두 살 먹은 애도 아니고, 세 살이나 먹은 내가 그런 것 가지고 울리가 없다. 내가 대성통곡한 것은 집안에 감도는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세 살 박이의 촉은 정확했다. 훗날 당사자인 엄마와 일가친척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니 가출이 분명했다.

 

 엄마를 잃은 슬픔은 오래 가지 않았다. 더 슬퍼할 겨를도 없이 엄마는 다시 돌아왔다. 다소 허무한 감도 있었다. 잠시나마 엄마 찾아 삼만리의 주인공이 되어 주변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동정을 받는 것은 물론, 엄마를 잃었으니 내가 원하는 것들을 채워주라며 시위도 할 수 있었는데, 그럴 기회는 금세 물 건너갔다. 엄마가 떠난 직후, 우는 나를 달래려 뭐라도 다 해줄 것처럼 내 눈치를 보던 아빠는 엄마가 돌아오자마자 베풀던 호의를 싹 거두셨다.

 기억을 최대한 조합해 보면, 엄마는 몇 시간도 되지 않아 돌아오셨다. 물론 시간 개념이 없었던 때라 그렇게 유추했는데, 훗날 당사자인 엄마와 일가친척들의 증언을 들어봐도 엄마가 복귀한 것은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물론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꽤 긴 시간 떠나 있었다. 하지만 가출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다.

 

 어찌되었든 가출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보통 엄마가 자식을 버리고 떠난 전적이 있으면 자녀에게 깊은 상처가 남는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아무렇지 않다. 그냥 재밌는 한 사건 정도로만 기억할 뿐이었다.

 문제는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아빠와 나에게는 그 일이 상처로 남지 않았는데, 가해자인 엄마는 여전히 상처를 안고 있는 것이었다. 보통 어린 새끼를 버리고 가출했다면 그 일을 숨기거나 미안해하는 것이 보통인데, 엄마는 숨기기는커녕 내가 성장한 후에도 그 사건을 종종 언급하셨다. 마치 못 다한 말이 있는 것처럼…….

 

 삼십 년이 지나 내 아들이 세 살 즈음이 된 올해. 간만에 아빠, 엄마, 나, 아내, 이렇게 넷이서 뉴스를 시청하게 되었다.

 중요하지 않은 기사로 편성되는 뉴스 뒷부분에서, 치솟는 이혼율에 대한 뉴스가 나왔다. 뉴스인데,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뉴스(News)라고 할 수 있을까? 치솟는 집값과 자살률, 하락하는 결혼과 출산율 등은 내보낼 게 딱히 없을 때마다 순차적으로 써먹는 게 아닌가 싶었다. 굳이 안 봐도 되는 뉴스를 보고 있어야 하나 싶어 채널을 돌리려 할 때, 엄마가 말씀하셨다.

 

 “이혼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대구나.”

 

 이런 뉴스가 나오면 어른들 입에서 나와야 할 말은 정해져 있다.

 

 “말세다.”

 “요즘 젊은이들 문제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말이 아니구나.”

 

 어떤 말이든 이 세 가지 범주에 속하기 마련이다. 애초에 그런 반응을 유도하려고 내보내는 뉴스니, 일종의 조건반사인 셈이다.

 그런데 엄마의 그 말씀은 뭔가 맥락을 벗어나는 듯 했다. 이혼도 막하는 타락한 세상이라는 뉘앙스가 아니었다. 문맥상으로는 맞는데, 엄마 특유의 어조를 고려하면, 비아냥거림이나 비판이 아니라 동경하는 말투였다. 이어서 엄마는 더 황당한 말씀을 아내에게 꺼내셨다.

 

 “너는 이혼하고 싶으면 당당히 해도 돼.”

 

 뭔 이런 엄마가 다 있나 싶었다. 며느리더러 아들을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 떠나라니. 그게 어디 엄마가 할 소린가?

 

 내가 황당해했다면 아내는 당황스러워 했다. 황당과 당황의 차이는 꽤 미묘하다. 차이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고 그 차이에 대해 고민조차 하지 않는 사람은 더 많겠지만 나는 그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억울한 감이 있으면 ‘황당’한 것이고, 속마음을 들킨 것 같으면 ‘당황’한 것이다. 예를 들어, 거짓말을 안 했는데 거짓말했다고 하면 황당한 것이고, 진짜 거짓말을 했는데 거짓말한 거 아니냐고 하면 당황하는 것이다.

 아내가 당황하는 것을 보니, 이혼을 생각해 보긴 했나보다. 스스로 결혼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당장이라도 정말 이혼해도 되냐고, 이혼을 허락해 주실 거냐고 물을 기세였다. 황당한 엄마의 말에 당황하던 아내는 이내 되도 안 되는 농담으로 분위기 반전을 노렸다.

 

 “어머님은 꼭 이혼하고 싶으셨다는 말씀 같네요? 호호.”

 

 원래 베짱이 좋은 것은 알았지만 직설적으로 저렇게 말할 줄은 몰랐다. 분위기를 상쇄하려는 유머겠지만, 오히려 엄마의 답변에 분위기는 더 무거워졌다.

 

 “나는 돈이 없어서 못했어.”

 

 사실 이혼을 생각하지 않은 기혼자는 없다. 여성의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가정의 가치나, 자녀 때문에 참고 사는 게 대부분이다. 위대한 헌신 아닌가. 이 결단과 의리야말로 사랑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지만 우리 엄마도 다른 한국의 위대한 어머니들과 같을 거라고 믿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나 때문에 이혼을 안 한 거라고.

 그런데 허무하게도 참고 산 이유가 돈 때문이라 했다. 나가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나갈 수 없었다. 엄마는 내가 서운해할까봐 얼른 주석을 달아주셨다.

 

 “너무 서운해 하진 마. 만약 돈이 있었으면 너 데리고 나갔을 거니까. 못 데리고 나갔어도 틈틈이 만날 수도 있는 거고……. 돈 있으면 밖에서라도 좋은 데 놀러가고 맛있는 것도 사줄 수 있잖아. 그러니 오해는 하지 마.”

 

 토론대회 출신답게, 아내는 살짝 반론을 제기했다.

 

 “보고 안 보고를 떠나서, 부모가 이혼했다는 사실 자체로 아이들이 상처받아요. 그래서 그냥 참고 사는 거 아녜요? 보고 안 보고를 떠나서 말이에요.”

 “에미야, 잘 봐봐. 매번 싸우면서 둘이 같이 키우는 거……. 무조건 좋은 걸까? 상처받은 엄마가 아이에게 스트레스 풀고, 그렇지 않아도 오만 상처 다 받아 늘 울상 지으면서 키우는 거, 말하지 않아도 다 느껴지잖아. 아이들이 모를까? 불안 속에서 크는 거야. 그게 제대로 키우는 거니? 오히려 더 독이 될 걸? 자녀를 생각해서라도 헤어져야지. 안 그래?”

 “뭐, 그렇긴 하네요.”

 

 무서운 말 같지만 생각해 보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자녀 때문에 이혼 못 한다고 하지만, 만약 돈만 있으면 이혼해도 자녀는 만날 수 있다. 특히 아나 좋은 모습으로 두 사람이 아이들을 키우는 것보다는 혼자서라도 늘 밝은 모습으로(데리고 키우든, 아니면 틈틈이 만나든) 대하는 게 훨씬 나은 것일 수도 있다. 정서라는 걸 무시할 수 없으니까.

 

 그럼에도 이혼 이야기를 이토록 아무렇지 않게 하는 모자의 모습이 평범한 것은 아니다. 아들 앞에서 며느리에게 이혼해도 된다는 엄마나, 그 이야기를 늘 들어왔다는 듯 받아주고 받아치는 아들이나, 모두 특이했다.

 이런 대화가 자연스러운 이유는 엄마의 가출 사건과 긴밀하게 연결될지 모른다. 아직 엄마가 가출한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알고 싶지 않고 알 필요도 없다.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충분히 예상되기 때문이다.

 

 세 살 즈음에는 몰랐지만, 열세 살 즈음 되었을 때는 엄마의 가출이 정당했음을 알 수 있었다. 스물세 살 때는 아는 정도가 아니라 이해하고 공감했다.

 엄마는 자가당착에 빠져계신 시어머니, 그러니까 우리 할머니 밑에서 꽤 고생하셨다. 할머니의 논리구조는 이렇다.

 

 “남편이 고생해서 벌어다 주는 돈으로 참 편하게 사는 구나.”

 “어머니, 그럼 제가 돈을 벌까요?”

 “아니, 우리 손주나 잘 키울 것이지 무슨 돈을 번다고 그래? 너 지금 제 정신이니?”

 

 이런 적도 있다.

 

 “우리 아들은 대학 나왔잖냐. 너는 우리 아들처럼 공부도 많이 안 했는데 우리 손주 어떻게 키우려고 그러니? 응?”

 “어머니, 그럼 제가 이제라도 대학에 들어갈까요? 애도 곧 국민학교 올라가니까 전처럼 매번 놀아주지도 않을 테니 시간도 좀 있고…….”

 “얘가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니? 여자가 살림이나 할 것이지, 배워서 어따 쓰려고 그래? 그럴 시간에 우리 아들이나 좀 더 신경 써라.”

 

 매번 이런 식이다. 자기 확신에 가득 찬 할머니는 자기모순을 알지 못했다. 할머니는 모순 속에 살아왔다. 할머니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할머니의 어머니도, 할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도 그랬다. 할머니가 낳은 고모도 저렇게 차별하는데 며느리는 오죽할까. 고모와 아빠를 대하는 논리가 이미 모순이었기에, 엄마를 대하는 태도는 놀랍지도 않았다.

 그때마다 나는 할머니보다 외할머니가 더 원망스러웠다. 어쩌면 이 상황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외할머니일 수도 있으니까. 엄마가 대학에 들어가고 그걸로 직업이라도 제대로 가지고 있었으면 저렇게 하실 수 있었을까? (물론 그랬다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겠지. 스무 살에 바로 결혼하시지 않았을 테고, 아빠를 만날 일도 없었을 테니까.)

 

 두 할머니에 대한 원망 때문에 나는 고모를 할머니로 대체했나 보다. 상식이 통하는, 그러면서도 할머니처럼 따뜻한 분, 그런 이상적인 할머니상을 찾다가 고모를 낙점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수련회에서 가족, 친척이야기하면서 눈물 쏙 빼는 타임이 주어질 때면 난 늘 특이한 아이였다. 남들은 아빠, 엄마 이야기하면서 눈물 짜내고, 경우에 따라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하면서 눈물 짜내는데, 나는 고모 이야기를 꺼냈으니 말이다.

 

 엄마의 이혼 포기 사유도 정확히 들었다. 그것은 할머니가 엄마에게 막 대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돈’이라는 한 글자에 모든 것이 담겨있었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경제권이 없다는 사실을 아주 잘 활용하셨다. 아무리 못되고 호되게 굴어 상처를 준들, 나갈 래야 나갈 수가 없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셨다. 어쩌면 할머니도 젊었을 때 그러셨을지 모른다. 그만큼 잘 알고 있었고 누구보다 당당했다. 마치 직장에서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 법한 단순 노동 직원에게 오만갑질을 다 하는 것처럼.

 엄마가 그날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집에 돌아온 것도 결국은 돈 때문이었다. 경제력을 올무로 그렇게 엄마는 우리 집에 잡혀 있었다.

 엄마만이 아니다. 다들 그랬다. 내 친구 엄마도, 내 전 여자친구 엄마도, 내 윗집 엄마도, 내 아랫집 엄마도 다들 그랬다.

 

 그러고 보면 주변 돌싱녀들을 보면 대부분 경제권을 가지고 있다. 자기 일이 있으니 이혼할 수도 있다. 애들에게 미안해 할 필요도 없다고 한다. 경제권이 있어 저마다 애들을 다 데리고 나왔으니까. 아빠의 부재에 대해서는 안타까워 하지만, 그런 사람을 아빠로 두느니 혼자 키우는 게 아이한테 더 좋다고 단언한다. 매번 싸우는 꼴 보이는 것보다 이게 아이 정서에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여성들과 달리, 우리의 엄마들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떠날 수 없었다. 경제권이 없으니 그럴 수 없었다. 능력은 있는데 경제권을 가질 기회가 애초부터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어쨌든 먹고는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엄마는 고모부의 바람으로 일찍이 홀로 된 고모를 그토록 부러워했다고 하셨다. 똑똑한 머리에 하고 싶던 공부도 못하고 스무 살에 팔려온 신세는 똑같은데, 고모는 고모부의 바람 덕분에 자연스럽게 해방되었지만 엄마는 그럴 수 없었다. 특히, 고모는 일찍이 홀로 되어 닥치는 일은 다 해낼 근성이라도 얻었으나, 평생 육아와 집안일만 하신 엄마는 그럴 자신이 없다. 그건 분명 엄마에게 근성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근성을 발휘하려고 할 때마다 아예 가능성 자체를 차단해 버렸으니 이제는 뭔가 해볼 의지조차 사라졌다. 스스로 없앤 게 아니라 박탈당했다. 고3 때까지 날리던 그 실력은 이미 재생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사라져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엄마는 가끔 아빠더러 “남들 다 피는 바람, 당신은 왜 안 피냐?”며 말도 안 되는 원망을 늘어놓으셨다. 어느 정도 경제적 지원을 받고 시댁으로부터 탈출할 기회는 그뿐인데, 바람을 두려워하는 아빠 덕에 그 기회조차 없었으니, 원망이 되셨던 모양이다.

 사실 처음에는 그것이 아빠에 대한 서툰 칭찬인 줄로만 알았다. “우리 남편, 바람도 안 피고 참 장해요.”라고 말하기 쑥스러워 반어법을 쓴 줄 줄로만 알았는데, 그건 칭찬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진심이었다.

 엄마는 아빠와 사이가 나쁘지 않다. 사랑해서 결혼한 건 아니라지만, 서로 배려하고 잘 챙긴다. 중매로 맺어진 인연이지만 점점 사랑해 가시는 듯 했다. 그러나 할머니에게 정기적으로 받는 무시와 상처는 아빠를 포기해도 좋을 만큼 강했다. 그래서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오늘과 같은 발언을 하실 수 있었다. 심지어 아빠 앞에서, 그리고 며느리 앞에서.

 

 그날 이후 태도가 바뀐 사람은 아내뿐이다. 행여 엄마 말씀을 받들어, 당장이라도 나가는 게 아닌가 염려되었지만 오히려 아내는 부드러워졌다. 사실 아내는 가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힘들어 약간은 까칠한 말투로 한탄을 내뱉곤 했다.

 

 “그래도 어머님은 당신 키울 때 일 안 하고 육아만 했잖아. 우리 엄마도 그렇고. 에휴. 그때는 맞벌이 아니어도 생활할 수 있고 집도 살 수 있었는데, 이놈의 시대는 왜. 나도 옛날에 태어났어야 하는데.”

 

 하지만 엄마의 이혼 포기 사유를 정확하게 듣고 난 다음부터 아내는 한 번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엄마의 발언 이후 우리 집 안에서 나타난 유일한 변화다.

 

 
 

맨위로맨아래로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20 아버지는 짜장면이 좋다고 하셨다 (2) 12/31 178 0
19 아버지는 짜장면이 좋다고 하셨다 (1) 12/31 178 0
18 둘리와 크롱에겐 무엇보다 내 집이 필요했다 … 12/31 179 0
17 둘리와 크롱에겐 무엇보다 내 집이 필요했다 … 12/31 173 0
16 나의 기막힌 아이디어 덕분에 아빠는 쉬게 되… 12/31 189 0
15 MP3 시대가 올 줄도 몰랐고, 스마트폰 시대가 … 12/31 182 0
14 ‘그냥 공무원 시험이나 볼까’ 하던 시절이 … 12/31 169 0
13 누군가에겐 결혼도 그저 사치일 뿐이다 (2) 12/31 163 0
12 누군가에겐 결혼도 그저 사치일 뿐이다 (1) 12/31 182 0
11 엄마는 애초부터 홀로서기를 못하게끔 설계… 12/31 173 0
10 엄마는 애초부터 홀로서기를 못하게끔 설계… 12/31 186 0
9 고모는 설렐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2 12/31 181 0
8 고모는 설렐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1 12/31 188 0
7 그녀는 아직도 군대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12/31 174 0
6 그녀는 아직도 군대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12/31 186 0
5 아빠는 군복무를 33개월만 해도 되는 행운을 … 12/31 177 0
4 아빠는 군복무를 33개월만 해도 되는 행운을 … 12/31 174 0
3 공부한 대로 거둔다. 단, 돈 있는 자가 거둔다 12/31 192 0
2 개천에서 용 나던 시대는 끝난 지 오래다 12/31 185 0
1 세 살 박이의 영어실력이 누군가에겐 지독한 … 12/31 27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