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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저마다 시대를 잘못 만났다(부제: 난세살이)
작가 : 박은혜
작품등록일 :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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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공무원 시험이나 볼까’ 하던 시절이 있었다
작성일 : 18-12-31     조회 : 170     추천 : 0     분량 : 3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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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번째 관문. 우리가 그 시대에 만났던 직업

 

 # ‘그냥 공무원 시험이나 볼까’ 하던 시절이 있었다

 

 세 살 즈음, 아빠 친구들이 유독 자주 놀러오셨다. 삼촌이라는 명칭으로 통일해서 부르다보니 그분들의 성함은 알 턱이 없었고, 비슷한 헤어스타일에 비슷한 옷을 입으셔서 그런지 누가 누구고, 누가 누구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이모라고 통칭되는 엄마 친구들만 해도 헤어스타일과 패션이 제각각이라 어느 정도 구분이 되는데, 아빠 친구들은 그냥 다 같은 분들 같았다. 그래서인지 어떤 분이 오셨었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난다.

 하지만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단어가 있었다. 아빠와 친구들이 나누던 대화 내용 중에 꽤 높은 빈도로 등장했던 단어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공무원’이었다.

 

 아빠는 졸업하자마자 잘 나가는 중소기업에 입사하셨다. 그에 반해 다른 친구들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이런 저런 준비를 하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중에는 대학교수가 되려고 대학원에 다녔던 분도 계시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사업을 시작한 분도 계셨다. 그런데 준비하는 게 조금 더 버거워지셨을 즈음, 몇몇 분이 우리 집에 와서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곤 하셨던 모양이다.

 

 “박사 과정 끝나면 유학도 가야 하는데, 이러다 결혼 시기만 늦춰질 것 같고……. 그냥 공무원 시험이나 볼까봐.”

 “그동안 공부한 게 아까워서 어쩐댜.”

 “그렇다고 꿈을 접는 건 아니고. 그냥 시험 삼아 한 번 보려고. 내 친구 영호 알지? 걔도 유학길 막히고 시간강사 봉급 얼마 안 된다며, 다 떼려치우고 시험 봤는데 쉽게 되더라고. 뭐. 한두 달 공부하면 된다던데?”

 “그래? 그럼 너 정도면 바로 되겠네. 시험 삼아 공무원 시험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구먼.”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아빠의 친구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털어놓으셨다. 그분은 고졸 출신이라 대학을 나온 아빠를 늘 부러워했다.

 

 “사업하려니 신경 쓰이는 것도 많고……. 예상한 것만큼 잘 팔리는 것 같지도 않고……. 그냥 공무원이나 할까봐.”

 “그런데 요새 공무원 시험 경쟁률 높아졌다지 않아?”

 “그래봤자 심심풀이로 보러 온 사람들이 많으니까. 뭐, 삼사 개월 준비하면 충분히 붙을 듯.”

 “그래. 니가 대학은 안 나왔지만 고등학교 때 공부는 꽤 잘 했잖냐. 너희 아빠 사업만 안 망하셨어도.”

 “에효. 그런 얘기 지금 해서 뭐한다냐. 이제라도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거지.”

 “그런데 공무원 월급 가지고 생활이 되겠어?”

 “그래도 퇴직하면 연금 나오니까 미리 저금하는 셈 치면 되지.”

 

 세 살 즈음,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알 턱이 없다. 공통적으로 들리는 ‘공무원’이라는 단어만 들릴 뿐이었다. 그마저도 하도 많이 들어서……. 너도 나도 안 되면 공무원이나 하자는 식으로 말했으니까……. 그래서 귀에 익었을 뿐이다. 그땐 대체 공무원이 뭔가 싶었다. 그게 뭐길래 ‘정 안 되면 하는 게 공무원’인가 싶었다.

 

 그로부터 십년 후, 그러니까 1996년도에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선생님은 갑자기 수업하시다 말고 자신이 교사가 되기까지 어떤 역경을 겪었는지에 대해 말씀하셨다. 수업 중에 삼천포로 빠질 때가 많으신 분이라 그리 당황스럽진 않았다.

 

 “나는 대학 졸업하고 어떻게 해서든 선생님이 되고 싶었거든? 그런데 우리 아빠는 ‘여자가 무슨 선생이냐?’며 시집이나 가라시는 거야. 그래서 얘들아, 내가 어떤 수를 썼는줄 아니? 일단 돈이라도 벌어서 집에서 나가야겠다 싶어서 공무원 시험을 봤어. 9급 공무원! 물론 임용고시 준비도 같이 하면서. 둘 중에 먼저 합격하는 데로 가려고 했지. 일단 돈부터 벌고 보잔 생각에 말이야. 그런데 공무원 시험에 덜컥 합격해 버린 거야. 난 사실 그러지 않길 바랐는데……. 막상 붙고 나니, 그대로 공무원이 되고 싶진 않더라고. 내 꿈은 교사였으니까. 9급 공무원이 아니라 교육공무원이었으니까! 그래서 9급 공무원 임용을 포기하고 그냥 임용고시 준비에만 집중하다 결국 교사가 될 수 있었지. 눈치 보이더라도 꿈을 위해 노력해서 교사가 될 수 있었고 내가 원하는 시기에 결혼도 할 수 있었고, 이렇게 너희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게지.”

 

 마침 끼어들기를 잘 하는 친구가 선생님께 이렇게 질문했다.

 

 “선생님. 저도 공무원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해요?”

 “뭐? 이 녀석! 꿈을 가져야지. 꿈을!”

 

 그 친구는 분명 공무원을 꿈꾸고 있어서 공무원이 되겠다고 말한 건데, 선생님은 왜 꿈이 없냐며, 꿈을 가지라고 하셨다. 대체 공무원이 뭐길래 저렇게 만만하게 보는 것일까. 그러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혹시 안 풀리면 나도 공무원 시험이나 봐야겠다고. 나도 그랬고 나와 절친인 주호도 그랬다. 하지만 그럴 일까진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바람을 아무렇지 않게 나누었던 때가 바로 1996년이었다. IMF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던 평화로운 그 시절이 바로 그때였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안 되면 공무원이나 하자던 주호는 3년째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잘 안 풀려 공무원이나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니, 자기가 말한 대로 공무원 시험에서 계속 떨어지고 있다.

 문득 작년 시험을 보고난 후에 주호가 환호하며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새벽 5시 즈음 되었을 때 무참히 벨이 울렸다.

 

 “야, 야! 128:1이래!”

 “뭐가…….”

 “원래 이번 9급 행정직 경쟁률이 거의 172:1이었거든? 지원자가 그렇단 거지. 그런데 실제 응시한 사람 기준으로 하면 128:1이라는 거야. 뭔가 가능성 있어 보이지 않냐?”

 “그래. 축하한다. 난 좀 더 자자.”

 

 졸려서 어쩔 수 없이 끊긴 했다만, 다시 잠이 들었을 때는 그가 정말로 합격하는 꿈을 꾸었다. 그만큼 주호의 합격은 나 역시도 간절히 바라던 소원이었다. 비록 전화를 급히 끊긴 했어도, 간절한 마음만큼은 강력했단 소리다.

 그러나 꿈은 꿈이라고 했던가. 합격 소식은 꿈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경쟁률이 크게 줄어들었지만 결과는 작년과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래도 한 살 더 먹어서 그런가. 이전 해에는 오열을 하더니만 그때는 그냥 멍하니 앉아 넋두리만 했다.

 

 사실 이 친구는 나보다 공부를 훨씬 잘하는 친구였다. 중학교 2학년 때 딱 한번 내가 앞지른 적이 있지만, 그때를 빼고는 늘 나보다 나았다. 노력도 노력이지만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은 편이었다. 사실 그가 공무원 시험을 본다고 할 때도, 그는 도전장이라도 내밀었지만 나는 가능성조차 없어 그냥 작은 회사에 들어갔다. 말이 회사지 사무실 두 칸이 전부인 그런 작은 직장이었다. 다행히 예상보다 일이 잘 풀려 회사는 성장했고, 나 역시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하며 결혼도 했다. 이런 일은 아주 드문 케이스다. 그러나 나보다 성적도 좋고 어학 실력도 뛰어나고 심지어 비주얼도 조금 더 나은 그 친구는 올해 또다시 공무원 시험에 도전한다. 이제 접고 다른 일을 알아보라고 할 수도 없다. 막다른 길에 몰려 도전한 게 공무원이니 이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주호를 더 힘들 게 하는 것은 낙방소식도, 오랜 솔로인생도 아니다. 주변 어른들이 아무 근거

 없이 하는 말씀들이 이 친구를 힘들게 했다.

 

 “너는 왜 이렇게 자리를 못 잡니. 나는 스물여섯에 회사 들어가서 집도 사고 결혼도 했어.”

 “공무원 시험 많이 어렵나? 나는 바로 붙었는데?”

 “잘 안 되면 그냥 공장이라도 들어가면 되지. 자네는 왜 이리 욕심이 많은가? 요새 젊은이들은 그래서 문제야. 쉽고 편한 일만 하려고 한단 말이지.”

 “그러니까 학창시절에 공부 좀 열심히 하지 그랬어. 놀기만 하다가 이제 와서…….”

 

 다들 96년 이전에 입사한 분들이다. 또 다른 내 친구는 그 친구(주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잊어버리라 했지만 그 친구는 잊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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