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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저마다 시대를 잘못 만났다(부제: 난세살이)
작가 : 박은혜
작품등록일 :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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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짜장면이 좋다고 하셨다 (2)
작성일 : 18-12-31     조회 : 179     추천 : 0     분량 : 7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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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는 짜장면이 좋다고 하셨다 (2)

 

 “아이고! 사모님 오셨어요?”

 

 엄마는 눈인사와 함께 목례하신 후, 나에게 귓속말하며 웃으셨다.

 

 “얼마 전에 딱 한 번 봤는데, 되게 친한 척 하신다. 아빠랑 한 번 와 본 게 전부인데.”

 

 어디에 앉을지 고민하는 중에, 사장님이 우리 쪽으로 굳이 왔다.

 

 “여기 앉으시죠.”

 “아, 네네.”

 

 우리는 사장님이 가리킨 곳에 앉았다. 사장님의 친절함이 그날따라 더 없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군대에 있다 보니, 민간인의 따뜻한 미소와 말 한마디가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자리를 안내해 주신 사장님은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시다가, 전화가 울리자 얼른 카운터로 가셨다. 나는 엄마에게 주문부터 하자고 했다.

 

 “뭐 먹을래?”

 “말했잖아. 난 짜장. 다 필요 없고 짜장.”

 “그래도 탕수육은 먹을 거지? 아니면 다른 요리?”

 “아니, 탕수육은 반찬으로 몇 번 나왔어. 일단 짜장.”

 “요즘 군대에선 탕수육이 반찬으로도 나와?”“엄마가 언제 군대 밥 먹어보긴 했어?”

 “그렇지. 아무튼 넌 짜장, 난 뭐 짬뽕 먹어야지. 그래도 요리는 시켜야 되는데, 뭐로 하지…….”

 

 전화를 끊은 사장님이 다시 우리 테이블로 왔다.

 

 “사모님, 잘 지내셨어요?”

 

 사장님이 다시 우리 자리로 오자 엄마는 흠칫 놀라며 다시금 인사를 하셨다. 친하지도 않은데 친한 척 한다며 웃으시던 엄마는, 사장님보다 더 친한 척을 하셨다.

 

 “사장님도 잘 지내셨어요? 호호.”

 

 딱 두 번 본 사장님이 옆 자리까지 온 게 무안하셨는지, 엄마는 빨리 주문부터 할 생각으로 메뉴판을 집어 드셨다. 한편 사장님은 지긋이 미소 지으며 한 말씀하셨다.

 

 “아이고, 우리 한 사장님. 소원 제대로 풀으셨네.”

 

 메뉴판을 보다 말고 엄마는 물어보셨다.

 

 “네? 소원이요? 그이가요? 언제 그런 이야기를…….”

 “아들이랑 꼭 한 번 다시 오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시더니.”

 “그이랑 잘 아시나 봐요?”

 “그럼요. 단골이죠, 단골. 이제 거의 친구 먹었죠. 하하.”

 “어쩐지. 그때도 그이랑 편하게 대화하시더라고요. 친하셨구나. 동네 친구들이랑 여기 자주 왔나 봐요.”

 “그런 건 아니고. 혼자 왔죠. 뭐.”

 “혼자요?”

 

 사장님은 당황하던 엄마와 대화하다 말고 갑자기 나를 지긋이 바라보셨다. 엄마가 대화하는 사이, 짜장면이 급했던 나는 메뉴판만 보며 엄마가 주문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장님이 대화를 멈추고 나를 보는 게 느껴지자 괜히 머쓱해졌다.

 

 “많이 컸네, 진짜.”

 

 엄마는 작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얘, 너도 여기 왔었니?”

 “어렸을 때, 아빠랑.”

 “아하. 그랬구나.”

 

 나는 나의 존재를 기억한다는 사실이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민망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아까 더 깍듯이 인사하는 건데. 하지만 그분이 나를 알아도, 나는 그분을 알 턱이 없다. 기억도 안 난다. 하지만 다시금 깍듯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진짜 많이 컸네. 어렸을 때 아빠랑 자주 왔잖아.”

 “아, 네네.”

 “아빠랑 계속 오지 그랬어. 아빠는 혼자 자주 오셨어. 혼자 몇 번 와서 이리저리 말 걸다가 친구하게 되었지. 그 이후로 술도 하고.”

 

 엄마는 술 먹었다는 말에 조금 언짢은 눈치였다.

 

 “술도 먹었어요? 아이참. 우리 목사님이 아시면 어쩌려고 자꾸 먹어…….”

 

 엄마는 남편 앞에 ‘우리’라는 말은 절대 안 붙이지만 목사님 앞에는 항상 ‘우리’라는 말을 붙인다.

 

 “아휴, 사모님. 그럴 수도 있죠. 조금 먹었어요. 남자들이 울적하고 그러면 술 마실 수도 있죠. 뭘……. 아들 보고 싶다고 그렇게 청승 떠는데, 안 줄 수가 없었다니까요.”

 

 미소 지으며 그때 일을 회상하는 사장님 앞에서, 엄마와 나는 잠시 어안이 벙벙한 채로 있었다.

 

 “군대 간 아들 보고 싶을 때마다 여기 왔어요. 아들과 추억이 있던 곳이잖아요. 하하. 뭐, 그럴 때면 술 한 잔 할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사모님이 이해하셔야지. 술은 그래도 서비스로 줬습니다. 하하. 저도 술친구가 필요했던 터라.”

 “아, 예.”

 

 엄마는 아까까지의 언짢음을 풀고 조심히 물어보셨다. 아까와는 달리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자주……, 왔나요?”

 “자주라고 하긴 그렀고. 몇 번 왔죠. 그게 자주인가? 하하. 군대 가기 전에도 왔고요.”

 

 사장님은 이번엔 나를 보면서 말씀하셨다.

 

 “좀 같이 와주지 그랬어. 뭐, 바빴겠지만. 이제라도 같이 와서 다행이네.”

 “네?”“한 사장님이 아들이랑 같이 오고 싶어 하셨거든. 그런데 자네가 몇 번 파토 냈다며? 아……. 아냐. 아냐. 농담이야. 다 이유가 있었겠지. 바쁘잖아. 요즘 친구들, 얼마나 힘들어.”

 

 사장님은 나에게 조금 아쉬워하는 투로 말씀하시다가, 예의가 아니다 싶으셨는지 얼른 농담으로 둘러대셨다. 하지만 나는 그냥 농담으로 묻어둘 수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뭔가 떠올랐다. 딱 두 번, 아빠는 다 큰 나에게 짜장면을 먹으러 가자고 요청하신 적이 있었다. 물론 아주 무뚝뚝하게……. 그냥 갈 거면 가고 말 거면 말라는 식이었다.

 그때가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난다. 시기를 기억할 수밖에 없는 게, 하루는 대학교 입학 전 날이었고, 하루는 입대 전 날이었기 때문이다.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첫 번째 짜장면 데이트가 성사되지 못한 것은 내가 다른 메뉴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학 입학 전날인데 중국집은 시시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요리를 시켜도 대학생이 된다는 부푼 꿈에 상응할만한 메뉴는 아니었다. 나는 그때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혹시 다른 거 먹으면 안 돼? 왜 하필 중국집?”“아니, 그냥. 아빠는 짜장면이 좋아서. 그런데 다른 데 가도 돼. 너 입학 축하하는 김에 가는 거니까. 그럼 어디 가게?”

 

 나는 아빠에게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면 안 되겠냐고 물었고, 내 뜻대로 우리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다. 물론 아빠는 패밀리 레스토랑이 뭔지도 모르고 가셨다. 생전 처음 보는 피 흐르는 미디움 스테이크와 하얀 파스타를 보고 꽤 당황하셨다.

 

 두 번째 짜장면 데이트가 성사되지 못한 것은 대학 친구들과 약속이 미리 잡혀있었기 때문이다. 입대하는 나를 위로해주겠다는 친구들과 며칠 전부터 약속을 잡아놓았다.

 

 “너 입대 전날에 중국집이나 갈까?”

 “웬 중국집?”

 “아빠는 짜장면이 좋아서. 너는 별로? 어디 갈까?”

 “아빠, 미안. 친구들과 그날 약속을 미리 잡아놔서. 진짜 미안.”

 미리 잡아놓은 약속이라 아빠의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고, 이미 가족과는 집에서도 계속 식사했던 터라 문제없다고 여겼다. 물론 아쉽긴 했다. 아주 조금. 그러나 죄송하진 않았다. 아빠도 꼭 가자는 투로 말씀하신 것은 아니었으니까. 만약 아빠가 간절하게 요청하셨으면, 친구들과의 약속을 접고 아빠와 밥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짜장면이 아닌 다른 것으로.

 

 0.5초 동안 그때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사장님의 얼굴을 다시 보니, “이제라도 와줘서 고맙다.”는 눈치였다. 나는 짜장면 주문에 대한 간절함은 잠시 잊은 채 조심스레 물었다.

 

 “아빠가 그때도 혼자 오신 거예요?”

 

 그때가 언제인지 사장님은 알 턱이 없다. 그러나 뭔가 알 것 같다는 투로 대답하셨다.

 

 “응, 그치. 아니, 그 양반은 맨날 혼자 와. 저번에 사모님이랑 한 번 온 것 빼고는 늘 혼자 왔어. 옛날에 아들이랑 짜장면 먹으러 왔던 게 좋았었나봐. 그래서 그때도 같이 오고 싶었나보지.”

 

 사장님은 자신이 기억하는 그때가 내가 생각하는 그때와 같을 거라는 투로 말씀하셨다.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묵직한 분위기 속에서 침묵하자, 사장님은 분위기를 풀어줄 겸 말씀을 이어가셨다. 물론 아빠가 얼마나 뒤에서는 아들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이 기회에 다 불어버리겠다는 심산인 듯 했다.

 

 “한 사장, 이 양반, 어렸을 때 아들과 만들었던 추억은 여기서 짜장면 먹은 게 전부라면서 늘 아쉬워하더라고.”

 

 알고 보니, 이곳은 35년 전에 사장님이 세운 곳이었다. 사장님은 아빠와 나이가 같았다. 사장님은 대학에 들어가지 않은 대신 수년 동안 일한 돈으로 이십대 후반에 이 중국집을 개업했다. 사장님은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남자와 자기 딸과 비슷한 나이의 남자아이가 함께 오자 처음부터 눈여겨보셨던 것 같다. 십 여 년이 지나 아빠가 나와의 추억을 더듬으며 혼자 이곳을 찾을 때도 알아보셨다. 장사하는 분들의 눈썰미는 대단한 것 같다.

 하루는 야근 후 고된 몸을 이끌고 방문했는데, 사장님이 갓 중학생 된 딸과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아빠는 한참이나 부러운 듯 바라보셨다고 한다. 그렇게 서로 근황을 주고받다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엄마 몰래 술친구가 되다 보니 속 얘기도 이리저리 털어놓으셨던 모양이다.

 손님인 나에게 반말하는 것도 과거의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인 듯 했다. 아이 때의 내가 떠올라서일까? 처음 보는 듯한 분이 반말을 하는 데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빠 친구면 당연한 거였다.

 

 “한 사장님은 나를 많이 부러워했어. 딸이랑 놀 시간이 많아 좋겠다고. 자기는 진짜 아빠로서 자격도 없다고. 옛날에 짜장면 몇 번 사준 게 전부라면서 많이 반성하셨지. 이럴 줄 알았으면 돈 많이 벌어서 사업했어야 했다고…….”

 

 엄마와 나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사장님은 우리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자, 민망한지 말을 이어가셨다.

 

 “그래서 사모님, 제가 그랬어요. 잘 하고 있는 거라고. 아들 위해 돈 버느라 못 놀아주는 거 가지고 기죽지 말라고. 그리고 뭐…… 사업한다고 해서 애들이랑 놀아주기 쉽나? 나도 윗층 건물 사서 살림 들여놓기 전에는 딸 크는 거 보지도 못했는데……. 맨날 밤늦게 들어가는데 어떻게 놀아줘. 아이는 자고 있고 나도 피곤해서 쓰러지고. 그런데 한사장한테는 이런 얘기해도 안 먹히죠. 아빠 마음이 다 그래요. 엄마의 사랑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런데 이 양반 왜 이리 안 와?”

 

 사장님은 입구 쪽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다시 말을 이어가셨다. 늦게 와서 다행이라는 투였다. 아예 우리에게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다 해버리려고 작정하신 듯 했다.

 

 “이 자리도 미리 저한테 연락해서 맡아달라고 한 거예요. 여기가 아들이랑 맨날 앉던 자리였다고.”

 

 기억이 났다. 조금, 아니 아주 많이……. 분명 어렸을 때 아빠랑 앉던 자리가 지금 이 자리였다. 입구 바로 앞에 있는 이 자리. 특히 쌀쌀한 날, 입구가 열릴 때마다 바람이 들어오면 아빠는 내가 감기 걸릴까봐 안절부절 하셨다. 사실 나는 이 자리가 텔레비전과 가장 가까웠기 때문에 무조건 여기 앉았다. 사장님은 어린 내가 올 때마다 만화를 틀어주셨다. 아빠는 바람 맞으면 안 되니 저쪽으로 옮기자고 했지만, 나는 그냥 여기 앉겠다고 고집했다. 그래서 입구와 텔레비전이 마주보는 이 자리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뭉툭한 텔레비전이 있던 그 자리에는 이제 커다란 벽걸이 TV가 걸려 있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다.

 기억 속에 있지만 그동안 나는 이곳에서의 일을 떠올리지 않았다.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사장님의 말을 통해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올랐는데, 아빠는 늘 이 자리를 기억하고 계셨다. 올 때마다 이곳에 앉으셨고 나와 다시 이 자리에 함께 앉기를 바라고 계셨다. 아빠에겐 이 자리에서의 추억이 전부였으니까.

 

 아빠는 내가 짜장면을 먹고 싶어 했다는 말을 전해 듣자마자, 엄마에게 양자강에서 만나자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가족이 도착하면 이 자리로 안내해달라고 부탁하셨던 모양이다. 아마도 아빠는 짜장면을 먹겠다는 나의 말을 듣고 더 없이 기뻐하셨을 것이다. 아빠가 그토록 기다리는 그 날이 온 것이니. 그것도 백일휴가라는 상징적인 날에.

 

 “그래도 한사장한테 말하지 마세요. 허허. 그런데 자네가 군대 갔을 때도 꼭 이 자리에 앉았다니까. 아들 보고 싶다면서 술 먹고 어찌나 울던지. 술 먹기 전에는 멀쩡하게 있다가, 술만 먹으면 그렇게 울어요. 글쎄……. 술 먹느라 짜장면은 거의 먹지도 않을 거면서 왜 매번 시키는지. 나야 돈 벌고 좋지만. 흠흠.”

 

 입대하던 날, 훈련소로 가는 길에도 진중함을 잃지 않아 나를 실망시켰던 아빠였다. 그런 아빠가 울었다니…….

 나에게도 아빠와 함께했던 짜장면의 추억은 특별했다. 소중한 추억이었다. 하지만 아빠에게는 특별하고 소중한 차원을 넘어 간절했던 것 같다. 나는 그나마 엄마와는 추억을 많이 쌓아 부모님과의 추억에 대한 간절함이 크지 않지만, 아빠는 아들과 쌓은 추억이 그뿐이라 더 없이 간절했다. 그 희소가치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쑥스러움을 뒤로 하고 큰 맘 먹고 건넨 그 제안들. 그 두 번의 제안이 아빠에게는 너무나 간절한 것이었다. 아빠는 그날, 짜장면이 좋다고 하셨다. 내가 곧이곧대로 듣고 비웃었던 그 말……. 그 말 안에는 나와의 추억이 그립다는 고백이 담겨 있었다. 비록 아무렇지도 않은 나의 거절에 홀로 이 자리를 찾으셔야 했지만, 아빠는 혼자서라도 그 추억을 되새기고 싶으셨나 보다.

 아빠는 야근할 때마다 아들과 놀아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계셨다. 야근 후 퇴근길에 울적하면 이곳을 찾으셨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추억을 안주삼아 마음을 달래셨던 아빠를 이해하니 아주 조금은 어른이 된 걸까? 내가 군대에 가자 그 어디에서도 드러내지 않았던 부정(父情)을 소주잔 위에 한껏 쏟아내셨다.

 

 한참 말씀하시던 사장님이 갑자기 카운터 쪽으로 가셨다. 입구 유리문에 아빠가 비친 것을 보셨던 것이다. 아빠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정말 오랜만에 나를 봤지만 크게 감동하지는 않은 눈빛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눈빛을 곧이곧대로 읽지 않는다.

 

 “입구에 앉았어? 방으로 잡지 그랬어.”

 

 아빠는 “그럼 옮길까?”라는 말이 나올까봐 얼른 말을 이어가셨다.

 

 “이미 앉았으니 그냥 앉고.”

 

 아빠는 우리 자리로 오면서 본격적인 연기를 시작하셨다. 웃길 법도 하지만 이제 울컥함이 더 컸다.

 엄마의 연기 역시 만만치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마음속으로 흘린 눈물을 다 삼키고는 핀잔을 주셨다.

 

 “아니, 왜 이렇게 늦게 와.”

 “차 막힐 때잖아. 그런데 방이 더 좋지 않나?”

 

 어설픈 연기를 하며 아빠는 자리에 앉으셨고 한 마디 하셨다.

 

 “그런데 왜 갑자기 짜장면을 먹자고 그래? 한우 같은 거 먹어야 되는 거 아니야? 훈련 받느라 힘들었을 텐데.”

 “그냥. 짜장면이 먹고 싶어서. 군대 가니까 갑자기 생각나더라고.”

 “아이, 얘기는 나중에 하고 당신도 빨리 시켜. 뭐 먹을 거야?”

 “나도 짜장면이지 뭐.”

 “당신도 짜장면?”

 “응. 나도 짜장면이 좋아서.”

 

 아빠는 짜장면이 좋다고 하셨다. 하지만 충분히 알 수 있다. 아빠가 좋아하고 있는 것은 짜장면이 아니란 것을.

 

 아빠는 그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짜장면을 드셨다. 반면 나는 그토록 소원하던 짜장면을 먹었지만, 아빠에 대한 알 수 없는 마음 때문에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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