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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생각시의 살인교사
작가 : 기쁨을아는몸
작품등록일 :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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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꽃님이 (1) - ②
작성일 : 17-10-31     조회 : 63     추천 : 0     분량 : 5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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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꽃님이 (1) - ②

 

 

 비슷한 시각 좌의정 신수근은 교태전(중전의 침전이 있는 전각)으로 향하고 있었다. 컴컴한 초하루 밤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따금씩 오른 손으로 갓을 당겨쓰며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는 걸 잊지 않았다. 갓 아래로 비치는 그의 눈동자가 하얀 도포자락에 반사되는 별빛조차 부담스러운 듯 자꾸만 갓 속으로 숨어들었다.

 

 이윽고 교태전에 들어선 그는 중전의 침소가 가까워지자 들릴 듯 말듯 조심스럽게 인기척을 냈다.

 

 “어험…….”

 

 숙직을 서고 있다 그를 알아본 정 상궁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가왔다.

 

 “아니, 좌의정 대감이 아니십니까? 야심한 시각에 의관도 갖추지 않으시고 어인 일로?”

 

 그런데 신수근은 정 상궁의 아는 척을 적잖이 부담스러워하며 곧바로 목소리를 낮추라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급한 일이네. 어서 중전마마께 고해주시게.”

 

 정 상궁의 목소리도 얼떨결에 함께 기어들어갔다.

 

 “마마께선 침소에 드신 지 오래 되셨습니다.”

 

 그러자 그리 말하며 난처해하는 정 상궁에게 신수근은 돌연 버럭 짜증을 냈다.

 

 “급한 일이라 하지 않는가? 자네가 고하지 않으면 내가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갈 것이야!”

 

 평소 점잖기로 유명한 유학자 신수근이 난데없이 예민하게 굴자 정 상궁은 일순 당혹스러움에 빠졌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지 금방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렇게 우물쭈물 주저하던 정 상궁은 결국 신수근의 눈치를 못 버티고 침소 문 쪽으로 다가가 조용히 고하였다.

 

 “마마, 좌의정 신수근 대감이 뵙기를 청하옵니다.”

 

 하지만 침소 안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정 상궁은 조금 더 목소리를 높였다.

 

 “마마, 좌의정 신수근 대감이 뵙기를 청하옵니다. 마마.”

 

 드디어 방 안에서 중전의 인기척이 들렸다.

 

 “으음 …….”

 

 그러자 그 새를 못 참은 신수근이 문 앞으로 다가가 엎드리며 말했다.

 

 “마마, 소신이옵니다. 급한 일이옵니다.”

 

 난데없는 오라비의 목소리에 중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라버님? 이 야심한 시각에 어쩐 일이십니까?”

 

 “마마,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일이옵니다. 들어가겠습니다.”

 

 “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중전은 그러면서 급하게 머리와 옷매무새를 고쳤다. 일찍이 신수근이 이리 조급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왠지 예감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이제 됐습니다. 들어오세요.”

 

 중전의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신수근은 헐레벌떡 직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허겁지겁 바닥에 꿇어앉으며 말했다.

 

 “마마, 큰일 났사옵니다.”

 

 “큰일이라뇨?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리 야단이십니까?”

 

 “마마, 역모의 조짐이 있사옵니다.”

 

 “역모요?”

 

 아직 졸음기가 약간 남아있었던 중전의 두 눈이 비로소 번쩍 떠졌다. 신수근은 중전의 목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까 전전긍긍해 하며 말했다.

 

 “마마, 목소리를 낮추십시오.”

 

 신수근의 말에 중전 또한 방금 전 자신의 목소리가 컸음을 새삼 깨닫고는 목소리를 낮춰 다시 물었다.

 

 “역모라니, 도대체 누가 역모를 꾸미고 있단 말씀입니까?”

 

 “얼마 전 자결한 승평부대부인의 동생 박원종이옵니다.”

 

 “승평부대부인이라면 전하의 백모가 아닙니까?”

 

 “그러하옵니다. 일전에 전하께서 그의 누이를 겁간한 뒤 자신을 내친 일로 원한을 가진 듯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전하께 바로 아뢸 일이지 어찌 제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실은 조금 전 박원종이 저희 집에 다녀갔사온데…….”

 

 신수근은 뭔가 난처한 듯 말끝을 흐렸다. 중전은 답답했다.

 

 “아니 그 사람이 이 야밤에 무슨 일로 오라버님을 찾았답니까?”

 

 “처음엔 그냥 술 한 잔 얻어먹으러 왔다고 해서 안으로 들였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대뜸 ‘누이와 딸 중에서 누가 더 중하냐?’고 묻는 것이…….”

 

 그 말에 중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다는 건 오라버님의 사위인 진성대군을 추대하겠다는 뜻 아닙니까? 그래서 무어라고 대답하셨습니까?”

 

 “일단 ‘딸이 더 중하다’고 대답하고는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 바로 마마께 달려온 것입니다.”

 

 중전은 기가 막혔다.

 

 “아니 그럼, 오라버님은 저와 전하를 버리시겠단 말씀입니까?”

 

 “그런 것이 아니오라…….”

 

 그러나 말끝을 흐리는 신수근의 부정은 도리어 중전의 화를 돋웠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대체 뭐란 말입니까? 지금 말씀이 그렇지 않습니까? 오라버님께서 제게 어찌 이러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신수근을 책망하는 중전의 얼굴엔 원망스런 기색이 역력했다. 신수근은 쩔쩔 매며 중전을 달랬다.

 

 “마마, 제가 어찌 마마와 전하를 배신할 수 있겠습니까? 소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시옵소서.”

 

 신수근의 간곡한 태도에 중전은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며 대꾸했다.

 

 “그럼 어디 말씀이나 한 번 들어봅시다.”

 

 신수근은 그제야 중전에게 차근차근 아뢰기 시작했다.

 

 “마마, 만약 소신이 누이가 더 중하다고 대답했다면, 박원종은 그 자리에서 저를 죽이고 그 길로 곧장 궁궐을 범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를 안심시키고 시간을 벌기 위해 ‘딸이 더 중하다’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그래요?”

 

 신수근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중전은 너무 섣불리 의심했던 건 아닌가 싶어 괜스레 멋쩍어졌다. 신수근은 계속 이야기했다.

 

 “또 소신이 바로 전하께 고하지 않고 마마께 먼저 온 까닭은, 만약 역도들이 추포되어 진성대군을 옹립하려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사림들이 들고 일어나 역모 수괴의 장인이 되는 소신은 물론 다른 훈구대신들까지 엮어서 죄를 물으려 할 것이고…….”

 중전은 그제야 미심쩍었던 것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하긴 그렇겠지요. 사림들은 틈만 나면 무오년과 갑자년에 있었던 사화를 되갚으려 혈안이 돼 있으니까요.”

 

 “그 뿐만이 아니옵니다. 죄가 저에게까지 미치면 사림들은 마마마저도 반역자 집안의 여식이라 하여 폐하려 들 것입니다.”

 

 ‘폐비’라는 말에 중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니 그럼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소신에게 계책이 있사옵니다. 역당들은 내일 전하와 마마께서 예정대로 장단석벽으로 유람을 떠나 궁궐이 비게 되면 그때 거사를 일으킬 계획입니다. 그러니 이따가 날이 밝는 대로 신병을 칭해 유람을 다음으로 미루십시오. 그럼 소신이 그들을 설득해 거사를 연기토록 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요? 마냥 미루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물론이옵니다. 그 다음엔 소신이 전하께 ‘박원종 일당들이 전날에 있었던 승평부대부인의 자결이 전하 때문이라는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다닌다.’고 고해 그들을 벌하도록 할 것입니다. 그러면 역모 계획은 완전히 무산될 것이옵니다.”

 

 중전의 얼굴엔 비로소 화색이 돌았다. 중전은 신수근에게 바짝 다가앉으며 그의 손을 부여잡았다.

 

 “역시 오라버님이십니다. 잠시나마 오라버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한 못난 저를 용서해주세요.”

 

 “아니옵니다. 신하로써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옵니다. 그럼 소신은 이만 물러가 일을 진행시키겠사오니, 마마께서도 부디 이 사실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해주십시오.”

 

 “이를 말씀입니까? 저는 오라버님만 믿겠습니다.”

 

 

 - § -

 

 

 신수근이 돌아간 지 두 식경이 다 지났지만, 중전은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오라비 신수근이 미덥지 못한 건 아니었으나, 그래도 손을 놓고 마냥 기다리고만 있자니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이부자리에서 뒤척이던 중전이 돌연 몸을 벌떡 일으켰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근심이 가득하던 중전의 얼굴엔 어느 새 화색마저 돌고 있었다.

 

 “정 상궁, 밖에 있는가?”

 

 “예, 마마.”

 

 정 상궁이 고개를 조아리며 침소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사옵니까?”

 

 “지금 당장 도성에서 가장 용한 무당을 불러오너라. 은밀히 데려와야 할 것이야.”

 

 “예? 이 밤중에 말이옵니까?”

 

 어리둥절해진 정 상궁은 그러면서 고개를 들어 중전을 쳐다봤다. 그러나 눈이 마주치자마자 돌아온 건 중전의 불호령이었다.

 

 “무슨 말이 그리 많은 것이냐? 내가 네게 그 까닭을 일일이 다 설명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더냐?”

 

 느닷없는 호통에 정 상궁은 찔끔하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두 식경 안에 데려오지 못하면 경을 칠 것이야! 서두르거라!”

 

 “예, 마마.”

 

 마음이 급해진 정 상궁은 허둥지둥 밖으로 물러나왔다.

 

 

 - § -

 

 

 “도성에서 제일 용하다는 무당이 박수(博數:남자 무당)였더냐?”

 

 “예, 마마. 소인 천명(天命)이라 하옵니다.”

 

 “뭐라, 천명? 천한 무당 따위에겐 과분한 이름이구나.”

 

 천명은 야심한 시각에 급작스레 중전 앞으로 끌려오다시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중전 앞임에도 얼굴에 쓴 상아처럼 허연 가면을 벗지도 않은 채 꼿꼿하게 앉아있는 것이 거만하기 짝이 없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중전은 그런 천명이 내심 마음에 든 눈치였다. 그런데 한 가지 마음이 쓰이는 게 있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왠지 귀에 익구나?”

 

 “소인은 궁궐이 오늘 처음이옵니다.”

 

 “그런가? 뭐 아무렴 그건 상관없는 일이니 그렇다 치고. 그래, 내가 왜 널 오라 했는지 알겠느냐?”

 

 중전은 천명의 능력도 시험해볼 겸 넌지시 떠보며 물었다. 그러자 천명은 입부분만 트여 있는 가면의 틈으로 히쭉 웃어 보였다. 그러더니 곧바로 눈을 감고서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중얼대기 시작했다. 그건 언뜻 주문처럼 들렸다.

 

 감고 있던 눈꺼풀과 목소리에 점점 힘이 들어가면서 미간과 입가에 잔뜩 주름이 생겨났다. 숨 한번 고르지 않고 계속되는 기도에, 되레 쳐다보고 있는 중전의 숨이 다 가빠질 지경이었다. 그러다 목구멍까지 숨이 턱 차오르는가 싶던 순간, 천명이 갑자기 눈알을 홱 뒤집으며 말했다.

 

 “대전(大殿)에 역귀(逆鬼)들이 가득 차 있는 것이 보입니다! 이, 이것은 …… 필시 역모가 있을 징조입니다!”

 

 중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정말 용하구나! 그 말이 맞다! 그래, 방편이 있겠느냐?”

 

 그러자 천명은 흰자위만 남아 있는 눈을 더욱 부릅뜨며 대답했다.

 

 “역귀들의 수는 열하나! 도성 밖 외딴 곳에 대음지(大陰地)를 파 그것들을 꾀어내 봉한다면, 역모를 꾀하고 있는 자들이 단번에 급살(急煞)을 맞아 죽을 것입니다.”

 

 중전은 반색했다.

 

 “그래? 그럼 내가 어찌하면 되겠느냐?”

 

 잠시 후 눈이 원래대로 돌아온 천명은 다시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음(陰)이 충만하고 남자를 모르는 18살 처녀 10명과 8살 계집 아이 1명을 궁궐 안에서 가려 뽑아, 내일 자정 대전을 휘감고 있는 음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도성 밖 남쪽 음기가 성한 자리에 생매장하여야 하옵니다.”

 

 “무어라?”

 

 부적을 쓰거나 굿 정도만 하면 될 거라 생각했던 중전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생사람을 땅에 묻어야 한다니.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8살 난 계집은 벙어리여야 하고, 나머지 처녀들 또한 모두 앞을 보지 못하고 소리도 들을 수 없어야 하옵니다.”

 

 중전은 기가 막혔다.

 

 “뭣이라? 궁궐에 그런 자들이 어디 있단 말이냐? 혹여 네 지금 되지도 않는 소리로 날 기망하려는 것이더냐?”

 

 중전은 그렇게 으름장을 놓으며 탁자를 손바닥으로 탁 내리쳤다. 그러나 천명은 꿈쩍하기는커녕 오히려 히쭉 웃으면서 대답했다.

 

 “마마. 처녀는 사람 손으로 만들 수 없지만, 나머지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중전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하지만 종사가 걸린 일에 망설임은 아니 될 일이었다.

 

 “그, 그럼 내가 그리 준비해 놓으면 되겠는가?”

 

 “어찌 마마께서 직접 그런 일까지 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마마께서는 그냥 그들을 가려 뽑아놓기만 해주시옵소서. 그럼 나머지는 소인이 다 알아서 하겠사옵니다.”

 

 “알겠네. 내 오늘 저녁 안으로 준비해놓을 테니 자네는 해가 지면 다시 오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정 상궁에게 얘기하고.”

 

 “예, 분부대로 하겠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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