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공포물
[완결] 생각시의 살인교사
작가 : 기쁨을아는몸
작품등록일 : 2017.10.30
  첫회보기
 
[조선] 무지개떡 - ②
작성일 : 17-11-03     조회 : 28     추천 : 0     분량 : 8476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5. 무지개떡 - ②

 

 

 그때 정 상궁이 소리쳤다.

 

 “저 자도 참하여라!”

 

 그러자 주변에 있던 내시무사들이 곧바로 칼을 빼들며 우르르 몰려와 동원을 에워쌌다. 동원은 하얗게 질려 그들을 쳐다봤다. 조바심이 난 정 상궁은 재차 목소리에 날을 세웠다.

 

 “뭣들 하느냐! 당장 베라!”

 

 그런데 돌연 천명이 내시무사들을 막아서며 호통을 쳤다.

 

 “물러나라! 부정한 피가 섞이면 하늘이 노하신다!”

 

 천명의 으름장에 내시무사들은 찔끔하며 멈칫했다. 천명은 이어 동원을 엄하게 타일렀다.

 

 “그렇게 버티고 있어봐야 아무 소용없다. 그러니 포기하고 어서 비키거라.”

 

 그러나 동원은 타일러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악에 받쳐 반박했다.

 

 “시, 싫어. 그, 그렇겐 못해. 설령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해도, 난 절대 포기 안 해. 아니 못 해!”

 

 천명은 버럭 역정을 냈다.

 

 “도대체 그 아이가 네게 무엇이건대 이리 고집을 피우는 것이냐?”

 

 동원은 말을 더듬었다.

 

 “그, 그건 …….”

 

 하지만 그러는 동안 동원의 뇌리에서는 꽃님의 얼굴과 그 위로 겹쳐지는 한 여인의 얼굴이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 머뭇거리는 동원의 앞으로 천명이 한 발짝 더 다가섰다. 동원이 겨누고 있던 칼끝이 천명의 가슴팍에 와서 닿았다. 그러나 천명은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동원을 한층 더 사납게 몰아세웠다.

 

 “왜 대답을 못하는 것이냐!”

 

 그때 돌연 하늘에서 ‘번쩍!’하고 커다란 번개가 내리쳤다. 동원은 순간 몸이 움찔하면서 눈이 질끈 감겼다. 머릿속이 어질어질하고 정신이 다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급기야는 전신이 후들거리며 입에서 실실 앓는 소리까지 새어나왔다.

 

 “으으으…….”

 

 그러는 사이 연이어 엄청난 천둥이 굉음을 내며 천지를 뒤흔들었다.

 

 콰콰콰쾅!

 

 그 바람에 동원은 순간 까무러치는 것처럼 몸서리를 치다, 저도 모르게 칼을 쥐고 있던 손이 앞으로 소스라쳐 뻗어나가 버렸다.

 

 “으, 으아아!”

 

 이어 들고 있던 칼이 어딘가에 콱 박히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칼날의 끝이 천명의 심장 한가운데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동원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얼른 칼에서 손을 뗐다.

 

 “아, 아냐 ……. 내가 한 게 아냐 …….”

 

 동원은 횡설수설하며 떨리는 눈빛으로 자신의 손과 천명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퍼렇게 질린 입술이 파르르 파르르 떨렸다. 가슴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던 천명은 결국 새하얀 가면 밖으로 피를 한 움큼 토해내며 중얼거렸다.

 

 “쿡 ……쿨럭…… 바보 같은 녀석 …….”

 

 그러고는 휘청거리다 이내 앞으로 풀썩 고꾸라져버렸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동원의 눈동자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한편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정 상궁은 길길이 뛰며 고함을 질렀다.

 

 “이이…… 저 놈을 당장 죽여라!”

 

 그러자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내시무사의 칼이 동원의 심장을 꿰뚫었다.

 

 “이야압!”

 

 동원의 입에서 가느다란 외마디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음……!”

 

 동원의 심장을 관통한 칼은 순식간에 등을 뚫고 나왔다. 칼날의 끝은 곧장 등 뒤에 서 있던 꽃님의 얼굴로 향했다. 꽃님은 하얗게 질려갔다. 칼끝은 꽃님의 눈동자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꽃님의 두 눈은 휘둥그레졌고 동공은 원형의 파문이 이는 것처럼 활짝 열렸다. 꽃님은 한번 들이킨 숨을 다시 내쉬지 못했다. 자칫 잘못 숨을 내쉬었다간 고개가 절로 앞으로 숙여져 눈이 찔려버릴 것만 같았다. 자연 발버둥도 멈췄다. 숨 막힐 듯한 공포는 순식간에 울음을 집어삼키고 눈물도 말려버렸다. 그때 칼끝에 맺혀있던 동원의 피가 칼날을 타고 도로 손잡이 방향으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내시무사는 동원의 가슴팍을 발로 차 뒤로 밀쳐 내면서 칼을 도로 뽑아냈다. 동원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힘없이 고꾸라졌다.

 

 “으윽…….”

 

 그와 동시에 동원의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이 방울이 되어 공중으로 흩날렸다. 꽃님의 눈언저리에서도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정 상궁은 거듭 고함을 쳤다.

 

 “뭣 하느냐! 어서 저 년의 혀를 잘라라!”

 

 정 상궁의 호통에 내시무사는 피 묻은 칼을 옆에다 휙 던져놓고는 천명이 떨어트린 쇠집게를 집어 들고 꽃님을 노리며 다가갔다. 꽃님은 사색이 돼서 내시무사와 쇠집게를 번갈아 쳐다봤다.

 

 이윽고 꽃님 앞에 다다른 내시무사가 쇠집게의 날을 꽃님의 입 안에다 콱 쑤셔 넣었다. 꽃님의 혀끝에서 집게 날의 차가움과 쇠의 비릿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꽃님은 혀가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날에 베어버릴까 두려워 저도 모르게 온몸에 힘이 꽉 들어갔다. 발버둥도 자연 멈춰졌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파랗게 질린 입술에서 파르르 파르르 경련이 일었다. 꽃님의 눈이 내시무사와 마주쳤다. 살려달라 살려달라, 꽃님의 눈망울은 그렇게 애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시무사는 집게를 쥐고 있던 손을 잔뜩 벼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손에 힘이 콱 들어갔다.

 

 일순간 꽃님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눈동자 중심으로부터 원형의 파문이 일었다. 동시에 입 안 가득 비릿한 쇠의 맛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곧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꽃님의 입안을 가득 채운 피는 이내 꿀럭꿀럭 뿜어져 나온 뒤 입에서 턱을 타고 내려오다, 일부는 다시 목을 타고 바닥으로, 일부는 차갑게 식어 있던 쇠집게를 데우며 그것을 쥐고 있던 내시무사의 손과 팔뚝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윽고 쇠집게가 꽃님의 입에서 빠져나왔다. 그러자 집게 날 부분에 매달려 있던 피투성이의 작은 살덩이 한 점이 ‘툭’하고 땅으로 떨어졌다. 꽃님의 잘린 혀였다. 순간적으로 몸서리를 치며 경련하던 꽃님은 이내 기운을 잃고 축 늘어졌다. 서릿발 같던 정 상궁마저도 그 광경을 계속 보고 있기가 불편해져서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꽃님을 붙들고 있던 내시무사가 꽃님을 구덩이 쪽으로 끌고 갔다. 꽃님은 초점이 풀린 눈으로 멍하니 땅바닥을 더듬으며 산송장처럼 질질 끌려갔다.

 

 그러다 쓰러져 있던 동원의 옆을 막 지나칠 때였다. 동원이 갑자기 손을 뻗어 꽃님을 끌고 가던 내시무사의 발목을 덥석 붙잡았다. 동원의 숨이 멎은 줄로만 알았던 내시무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비명을 내질렀다.

 

 “우와악!”

 

 그리고 곧바로 다리를 탁탁 털었다. 그러나 동원의 손은 그대로 돌이 돼버린 것처럼 묵직해져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라버니!’

 

 정신이 번쩍 든 꽃님은 동원을 향해 악을 쓰며 몸부림을 쳐댔다.

 

 “으읍! 으읍!”

 

 하지만 동원은 끝내 고개를 들지 않았다. 다만 내시무사의 발목을 붙들고 있는 오른 팔만이 살아 있는 듯했다. 결국 보다 못한 다른 내시무사가 달려들어 동원의 팔꿈치 부분을 칼로 힘껏 내리쳤다. 그러자 잘린 동원의 위 팔뚝이 힘을 잃고 맥없이 땅으로 털썩 떨어졌다. 꽃님은 더 미친 듯이 몸부림을 치며 발악했다. 하지만 동원에게선 더 이상 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나 내시무사가 아무리 다리를 털어내도 동원의 손만은 그의 다리를 좀처럼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시무사는 슬슬 마치 귀신에게 다리를 붙들리기라도 한 것처럼 겁이 나기 시작했다.

 

 “으으으, 떨어져! 떨어지란 말야!”

 

 급기야는 꽃님을 붙들고 있던 손도 놔버린 채 주저앉아 동원의 손과 씨름을 했다. 발버둥을 치던 꽃님은 그 바람에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그 때 꽃님의 품에서 하얀 보자기로 돌돌 싸매져 있던 작은 덩어리가 땅 위로 툭 튀어나왔다. 그것은 데굴데굴 굴러가면서 보자기가 자연스럽게 펼쳐졌고, 동원의 머리맡에서 멈춰 섰다. 보자기 안에 들어있던 건 낮에 꽃님이 동원에게서 받았던 무지개떡이었다. 보자기는 꽃님의 입에서 흐른 피로 군데군데 얼룩이 져 있었지만, 무지개떡만은 여전히 하양, 연두, 노랑, 분홍의 본래의 색 그대로였다.

 

 그 때 내시무사의 발목을 붙들고 있던 동원의 손아귀가 스르륵 풀렸다. 아무리 용을 써도 떨어질 생각을 않던 동원의 팔뚝이 갑자기 너무도 쉽게 떨어져나가자 내시무사는 얼떨떨했다. 하지만 곧 정신이 번쩍 든 그는 기겁하며 팔뚝을 동원의 머리맡 쪽으로 던져버렸다. 땅에 떨어진 팔뚝은 데구루루 구르다가 마치 일부러 그런 것처럼 무지개떡 위로 손이 포개지면서 멈춰 섰다. 꽃님은 그제야 발버둥을 멈췄다. 단지 소리 없는 흐느낌만 계속할 뿐이었다.

 

 한편 정 상궁은 일이 계속 꼬이면서 지체되자 조바심에 안절부절못했다.

 

 “서둘러라! 시간이 없다!”

 

 정 상궁의 호통에 정신이 번쩍 든 내시무사는 자리에서 허겁지겁 일어났다. 그리고 바닥에 엎어져 있던 꽃님을 다시 일으켜 세워 구덩이 쪽으로 끌고 간 다음 그 안에다 확 밀어 넣었다.

 

 꽃님은 구덩이 사면을 타고 바닥까지 한 번에 굴러 떨어졌다. 옷이며 얼굴이며 머리까지 온통 흙이 피에 엉겨 붙어 범벅이 되었다. 꽃님의 주변엔 눈과 귀가 지져진 나인들이 여전히 신음하며 꿈틀대고 있었다.

 

 꽃님의 위로 흙이 날아와 덮이기 시작했다. 무서웠다. 하지만 이제 꽃님에겐 몸을 가눌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꽃님의 입 주변이 붉어질수록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져갔다. 자꾸만 눈이 감겼다. 그럴수록 다시 힘을 내어 눈을 크게 떠봤지만, 그때마다 흙이 눈꺼풀 안으로 들어와 눈물과 엉겨 붙으면서 시야는 점점 흐려져 갈 뿐이었다. 바로 가까이에서 들리던 나인들의 신음소리도 어느 샌가 점점 아득해져 갔다.

 

 내관들은 자정이 되기 직전에서야 겨우 구덩이를 다 메울 수 있었다. 정 상궁은 그제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그때 돌연 하늘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드리워졌다.

 

 번쩍! 우르르 쾅! 그르르르 …… 쏴아아아! …….

 

 천지가 진동할 정도의 굉음과 함께 벼락과 천둥이 내리치더니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빗줄기는 점점 강해져 순식간에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그 와중에도 계속되는 벼락과 천둥은 사람들의 혼을 완전히 쏙 빼놓아 버렸다. 그러다 문득 정상궁의 눈에 천명과 동원이 흘린 피가 빗물에 씻겨 땅속으로 스며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정 상궁의 뇌리엔 방금 전 천명이 내시무사들을 제지하며 했던 말이 스치고 지나갔다.

 

 

  - 물러나라! 부정한 피가 섞이면 하늘이 노하신다!

 

 

 다급해진 정 상궁은 내시무사들에게 소리쳤다.

 

 “부정 탄다! 저 놈들을 멀리 내다 버려라!”

 

 그 말에 내시무사들이 후다닥 달려가 천명과 동원의 시신을 옮기기 시작했다. 시체들은 각기 두 사람에게 다리를 한쪽씩 붙들린 채 물에 젖은 거적때기처럼 질질 끌려갔다. 그러면서 만들어지는 피의 흔적들은 생기기가 무섭게 비에 씻겨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잠시 후 둘의 시신이 멀리 치워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가 뚝 그쳤다. 천지를 뒤흔들던 벼락과 천둥도 일시에 멎어버렸다. 숯불이 활활 타오르던 화로도, 또 그 안에서 벌겋게 달궈지던 인두와 기름 주전자도 어느 새 차갑게 식은 채 연기만 솔솔 내고 있었다. 쇠집게와 땅바닥 여기저기에 묻어 있던 피의 흔적도 말끔히 지워져 있었다. 연이은 돌발 사태와 변덕스런 날씨로 인해 마음이 뒤숭숭했던 정 상궁은 그제야 비로소 한숨을 돌렸다.

 

 

 - § -

 

 

 축시(새벽 1시)가 이미 훌쩍 넘은 시각. 교태전의 불은 밤늦도록 꺼질 줄 몰랐다. 중전은 자시(밤 11시)에 찾아오기로 한 신수근에게서 아무런 소식이 없자 점점 불안감이 더해갔다. 그러다 결국 조바심을 참지 못하고 숙직을 서고 있던 윤 상궁을 불러 말했다.

 

 “지금 당장 내 친정으로 가서 오라버님을 모셔오너라. 네가 직접 다녀와야 할 것이야. 그리고 아랫것을 시켜 상선에게 내게 좀 다녀가라 이르게 하고.”

 

 “예, 마마.”

 

 윤 상궁이 명을 받고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정 상궁이 돌아왔다.

 

 “마마, 정 상궁이옵니다.”

 

 중전은 귀가 번쩍 뜨였다.

 

 “오, 그래? 어서 들어오너라.”

 

 정 상궁이 방으로 들어와 앉자마자, 중전은 다짜고짜 앞으로 당겨 앉으며 물었다.

 

 “일은 실수 없이 처리했겠지?”

 

 중전의 조바심 가득한 질문에 정 상궁은 순간 얼굴이 굳어지며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

 

 정 상궁의 뇌리에선 양말산에서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거기서 일어난 일들을 그대로 중전에게 고했다간 경을 칠 수도 있을 터, 정 상궁은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애써 참으면서 입을 꾹 다물었다. 반면에 중전은 정 상궁의 대답이 시원스럽지 않은 것이 영 석연치가 않았다.

 

 “왜 그러느냐? 뭐가 잘못되기라도 한 것이냐?”

 

 “아, 아니옵니다…….”

 

 그때 윤 상궁의 전갈을 받은 상선이 방문 앞에 도착했다.

 

 “마마, 소인 상선입니다.”

 

 “그래, 어서 들어오시게.”

 

 상선은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머리를 조아리며 앉아 중전에게 물었다.

 

 “마마, 이 시각에 무슨 일로 소인을 찾으셨습니까?”

 

 “실은 어젯밤 내 오라버님이 오셔서 오늘 밤 역모가 있을 지도 모른다고 전해주셨었네.”

 

 상선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에?”

 

 그런데 중전의 표정은 상선의 생각과는 달리 불안해보이기는커녕 오히려 의기양양해보였다.

 

 “하지만 걱정 마시게. 내 이미 방편을 써놨으니.”

 

 상선은 어리둥절했다.

 

 “방편이라 하심은 …….”

 

 “실은 내 조금 전 용한 무당을 시켜 남자를 모르는 생각시 한 명과 나인 열 명을 양말산에다 제물로 바치는 굿을 하게 했다네. 그러면 역당의 주모자들이 오늘 밤 안에 급살을 맞아 죽는다고 하더군.”

 

 상선은 자못 어이가 없었다.

 

 “하오나 어찌 무당의 말 따위를 …….”

 

 하지만 중전은 여전히 자신만만했다.

 

 “걱정마시게. 그 자는 역모가 있을 거란 사실도 알아맞혔을 정도로 용한 자였으니. 아무튼 그렇다 하더라도 만사를 신중히 해서 나쁠 건 없을 터. 오늘 밤 자네는 전하 주변을 보다 추밀하게 살펴드려야 할 것이야. 알겠는가?”

 

 “알겠사옵니다, 마마. 하오면 소인은 이만…….”

 

 그런데 자초지종을 다 듣고 일어나려던 상선의 뇌리에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이에 일어나려다 말고 다시 바닥에 꿇어앉아 중전에게 물었다.

 

 “마마, 혹시 양말산에 생매장하였단 생각시의 이름이 ‘꽃님’……이가 아니옵니까?”

 중전은 깜짝 놀랐다.

 

 “아니, 자네가 그것을 어찌 아는가?”

 

 상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마마, 그 아이는 처녀가 아니옵니다.”

 

 중전은 아연실색했다.

 

 “처녀가 아니라니? 이제 겨우 여덟이 된 아이가 처녀가 아니라니?”

 

 “마마, 그 아이는 전날 밤 강녕전에서 전하께서 취하셨던 아이옵니다.”

 

 “뭣이라?”

 

 중전은 하늘이 노래졌다. 내 나이 이제 서른에 불과하고 후궁도 여럿인데 8살 아이를 취하였다니! 그게 또 하필이면 그 아이였다니! 순간 정신이 아찔해진 중전은 몸이 옆으로 휘청거렸다. 이를 본 정 상궁과 상선은 화들짝 놀라며 중전을 부축했다.

 

 “마마! 정신 차리시옵소서! 마마! …….”

 

 그러나 중전은 정상궁의 팔에 기댄 채 허공을 바라보며 넋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그럴 순 없느니라. 그럴 순 없어 …….”

 

 그때 갑자기 궁궐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

 

 “폭군 융(瀜‧연산군의 휘)을 죽여라!”

 

 “폭군 융을 찾아라! 와아!”

 

 놀란 정 상궁은 중전을 흔들며 소리쳤다.

 

 “마마! 역모이옵니다! 정신 차리시옵소서! 마마!”

 

 그러나 좀 전의 충격이 여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였던 중전은 도리어 벌떡 일어나더니 격앙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이럴 순 없어! 이럴 수는 없어! …….”

 

 역당들의 함성이 궁궐을 옥죄듯 점점 더 가까워져 왔다. 급기야 교태전에서도 우당탕탕 하는 발소리와 자지러지는 비명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상선은 조바심이 나 견딜 수가 없었다. 중전과 함께 계속 있다가는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것이 분명했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마마, 소인은 전하를 모시러 강녕전으로 가겠습니다!”

 

 상선은 그러더니 중전의 대답은 들을 생각도 않은 채 황급히 바깥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가 막 방을 나서려던 찰나, 복면을 한 일련의 무리들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그 바람에 문짝에 들이받힌 상선은 비명을 지르며 중전의 옆으로 나뒹굴었다.

 

 “으악!”

 

 기겁한 정 상궁이 벌떡 일어나 그들 앞을 막아섰다.

 

 “이놈들! 중전마마시니라! 어서 물러나지 못하겠느냐!”

 

 그러나 그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정 상궁을 단칼에 베어버렸다.

 

 “이얍!”

 

 “아악! …… 중…… 전 …… 마마 …….”

 

 정 상궁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풀썩 고꾸라졌다. 중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미처 도망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부들부들 떨고만 있는 중전의 눈빛엔 분노와 두려움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으으으으…….”

 

 중전의 얼굴을 확인한 무리의 우두머리가 좌우에 소리쳤다.

 

 “중전을 근정전* 앞으로 끌고 가라!”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무리에서 2명이 튀어나와 중전의 좌우로 달려들었다. 그들은 중전의 팔을 붙들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

 

 “이 놈들! 이 손 놓지 못하겠느냐! 국모를 이리 대하는 법은 없다! 놔라!”

 

 중전이 끌려 나가는 동안에도 도처에서는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 궁인(宮人)들이 칼을 맞고 마룻바닥에 나뒹구는 소리와 피비린내가 교태전 전체에 진동했다. 마치 커다란 감나무에서 새빨갛게 익은 홍시들이 후드득 떨어져 그 파편과 즙이 사방으로 튀는 듯 했다. 중전은 계속 ‘전하’와 ‘오라버님’을 부르짖었지만, 점점 커지는 반란의 함성과 아비규환의 비명 속에 이내 묻혀버렸다.

 

 

 - § -

 

 

 동이 튼다. 도성의 하늘은 맑고 고요하다. 새들이 나와 날갯짓을 하며 밤사이 비에 젖었던 깃털을 털어낸다.

 

 양말산 기슭에도 동이 튼다. 바닥에 나뒹굴고 있던 무지개떡 위로 아침 햇살이 내리 비춘다. 비에 씻겨 문드러지고 엷어진 하양, 연두, 노랑, 분홍의 빛이 다시 점점 선명한 빛깔을 찾아간다. 실잠자리 한 마리가 날아와 그 위에 앉는다. 은빛 날개와 자개 빛깔의 꼬리가 간간이 미동(微動)한다.

 

 

 

 ===============

 

 * 경복궁 중앙에 위치한 커다란 전각. 외국 사신을 맞이하거나 즉위식을 하는 등 주로 대궐의 큰 행사를 하는 데에 사용된다.

 

 
 

맨위로맨아래로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