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공포물
[완결] 생각시의 살인교사
작가 : 기쁨을아는몸
작품등록일 :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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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꽃님이 (2) - ②
작성일 : 17-11-05     조회 : 35     추천 : 0     분량 : 5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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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꽃님이 (2) - ②

 

 

 자판기는 복도 끝 구석진 곳에 있었다. 게다가 오늘 따라 그곳 천장의 형광등들도 다 나가고 달랑 1개만 켜져 있는 바람에 평소보다 몇 배로 더 어두웠다. 본회의장 앞 대치로 본청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던 탓인지, 자판기 버튼의 절반 이상엔 벌써 ‘매진’이라는 빨간 불이 들어와 있었다.

 

 “거 참, 하라는 싸움은 안하고 여기서 노닥거리기만 했나? 많이들 마셨네. 어디 보자. 주스랑 콜라는…… 뭐야? 다 떨어졌잖아? 어쩐다 …… 아, 지하!”

 

 평소엔 ‘사람도 별로 안 다니는 지하에 굳이 자판기를 설치할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이야. 동원은 후다닥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다행히 지하 자판기는 모든 음료의 버튼이 ‘그린 라이트’, 즉 판매 중이었다. 동원은 지갑을 꺼내기 위해 재킷 주머니를 뒤적였다.

 

 “어디보자, 천 원짜리가 …….”

 

 그런데 그때 갑자기 멀지 않은 곳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 같은 게 들렸다.

 

 쨍그랑!

 

 동원은 움찔했다.

 

 “뭐, 뭐야?”

 

 가만히 소리가 난 곳을 따져보니 복도 끝에 있는 예배당 쪽에서 난 소리인 것 같았다.

 

 “설마 십자가라도 엎어졌나?”

 

 말은 그렇게 농담처럼 했지만 괜스레 궁금증이 생긴 동원은 어느새 발걸음이 예배당 쪽을 향했다.

 

 예배당의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보통은 굳게 닫혀 있는데……. 동원은 슬며시 문을 열어 안을 기웃거렸다. 여느 때처럼 깜깜하고 고요했다.

 

 “아무도 없나?”

 

 그러면서 문 옆에 있는 조명 스위치를 켰다. 형광등이 켜질 때 나는 특유의 ‘띵 띵’ 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들렸다. 이윽고 예배당이 환해지자, 동원은 잘못해서 깨진 유리조각이라도 밟을세라 발아래를 힐끔거리며 정면의 단상 쪽으로 조심조심 걸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단상 위엔 웬 액자가 유리가 깨진 채 엎어져있었다. 뒤집어보니 예수의 초상이 그려진 그림이 끼워져 있었다.

 

 “이거였구나? 난 또 뭐라고.”

 

 그런데 그때 예배당 안의 형광등들이 일제히 지직거리며 정신없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식겁한 동원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문득 겨우 불이 깜빡이는 정도 가지고 겁을 집어먹은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에이, 놀랐잖아.”

 

 그런데 그렇게 태연한 척 중얼거리면서도 가슴 한 쪽은 왠지 꺼림칙했다. 형광등이 한 개도 아니고 여러 개가 동시에 수명이 다한다는 것은 우연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었다. 그리 생각하니 왠지 기분이 다시 오싹해졌다. 그리하여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괜히 겁먹지 않은 척 허세를 부리며 출입문 쪽으로 돌아섰다.

 

 “에라 모르겠다. 방호원한테 얘기하면 알아서 치우든가 하겠 …… 으헉!”

 

 동원은 순간 멈칫했다. 출입문 바로 안쪽에 7~8살쯤 돼 보이는 창백한 얼굴의 여자 아이가 한명 서 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드라마에서나 봤을법한 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옷은 물론 하얀 피부에서도 마치 동짓날 밤 내린 눈에 반사된 달빛처럼 어둠 속에서 서느런 광이 나는 듯 했다.

 

 그런데 아이는 동원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갑자기 입을 쩍 벌리며 검붉은 피를 좌르륵 쏟아냈다.

 

 꿀럭꿀럭.

 

 아이의 턱과 목, 저고리, 그리고 치마를 타고 끝도 없이 쏟아져 흘러내리던 피는 바닥을 순식간에 흥건히 적셔버렸다.

 

 동원은 본능적으로 도망칠 틈을 찾았다. 하지만 여자 아이의 어깨 너머에 있어야 할 출입문은 벽이 되어 사라지고 없었다. 겁이 난 동원은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다 발뒤꿈치가 설교대에 부딪혔다.

 

 “엇?”

 

 그런데 동원은 발밑을 돌아보다 그만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바닥이 피처럼 검붉은 색으로 변해있었던 것이다. 흡사 오래된 시체에서 흘러내린 피가 고여 울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금방이라도 비릿한 피 내음이 확 풍겨 올라올 것만 같았다. 피의 늪 위로 발을 들인 것처럼 불안해진 동원은 저도 모르게 움찔하며 연신 까치발을 세워 댔다. 그러나 다행히도 바닥은 여전히 딱딱했다. 동원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이상한 변화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벽과 천장의 표면이 마치 뜨거운 불길에 타들어가는 피부껍질처럼 벗겨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불에 녹은 붉은 색 파라핀 같은 찐득찐득한 액체로 변해 엉겨 붙으면서, 벽을 타고 흘러내리거나 천장에 방울져 맺혔다가 비처럼 후드득 떨어졌다. 밑에 서 있다 그것을 그대로 맞은 동원은 화상이라도 입게 되는 줄 알고 기겁하며 잔뜩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뜨겁진 않았다. 오히려 따뜻했다. 그렇다는 건 ……?

 

 동원은 순간 이것이 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좍 끼쳤다. 확신은 할 순 없었지만, 막상 그런 생각이 들고 나니 괜히 그 액체로부터 피비린내 같은 것이 스멀스멀 풍겨 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단상 위에 떨어져 있던 예수의 초상은 괴기스런 표정으로 동원을 노려보고 있었고, 무섭게 부라리고 있는 눈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서슬 퍼런 빛을 발하고 있었다. 또 줄줄이 늘어서있는 예배용 의자 밑에서는 시체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동원을 덮치려고 했다. 아니 정말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인지 동원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은 굴뚝같았지만, 마음만 급할 뿐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던 그때, 갑자기 한 생각이 번뜩 뇌리에 스쳤다.

 

 ‘그래, 어쩌면 피곤해서 깜빡 선잠이 든 건지도 몰라!’

 

 그러고는 그 즉시 두 눈을 질끈 감고 양손으로 자기 뺨을 미친 듯이 때리기 시작했다.

 

 “깨어나라! 깨어나라! 깨어나라! …….”

 

 뺨이 손바닥에 얻어맞을 때마다 이마와 턱으로 송골송골 스며 나와 있던 식은땀들이 방울이 되어 사방으로 튀었다. 동원의 뺨이 점점 벌겋게 부어올랐다. 그렇게 ‘깨어나라’라는 말을 정확히 10번 반복했을 때 동원은 마침내 뺨때리기를 중단했다. 주변은 고요했다. 왠지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의 일들이 모두 꿈이었기를 빌면서 천천히 실눈을 떴다. 눈꺼풀 사이로 하얀 형광등 빛이 새어 들어왔다. 동원은 이제 꿈에서 깨어난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눈을 번쩍 떴다. 주변은 동원이 익히 알고 있던 바로 그 예배당이었다.

 

 “하아, 십년감수했네.”

 

 동원은 소매 깃으로 이마와 턱에 맺혀 있던 식은땀을 닦아 냈다. 땀이 소매 깃에 흥건히 젖어 나왔다.

 

 “뭐야, 진짜 잠들기라도 했던 거야?”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동원의 표정은 어색하기만 했다. 잠결에 꿈을 꾼 것인지, 아니면 헛것을 본 것인지, 그도 아니면 진짜로 무슨 일이 일어나기라도 했던 것인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확실한 건 뺨이 뜨끈뜨끈 열이 나며 얼얼하다는 것뿐이었다. 괜스레 머쓱해진 동원은 손으로 뺨을 어루만지며 밖으로 향했다.

 

 하지만 동원은 채 한발자국도 옮기지 못한 채 놀라서 멈춰 섰다. 방금 전의 그 아이가 예배당 출입문 안쪽에 여전히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시 보니 지금은 피투성이가 아니었다. 귀엽고 뽀얀 얼굴에 단아한 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었다. 동원은 놀랐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반(半)잠결에 저 애를 보고 잠깐 악몽을 꾼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동원은 아이 앞에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으며 물었다.

 

 “너 여기서 뭐해? 부모님이 여기서 일하시니?”

 

 그러면서 슬쩍 아이의 차림새를 살폈다. 그러다 문득 낮에 의원회관 로비에서 있었던 전통문화 행사가 떠올랐다.

 

 “아, 너 혹시 낮에 어린이 민요 합창단인가 뭔가 그걸로 온 애야? 그렇담 큰일이네. 그건 한참 전에 끝났는데.”

 

 동원은 그러면서 아이가 혹여 추운 날씨에 잘못된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손과 뺨을 만져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피부가 얼음장처럼 차가왔다.

 

 “이런, 얼굴이고 손이고 죄다 꽁꽁 얼었네. 얼른 나가자. 오빠가 집에 데려다 줄게. 지금은 일단 이거라도 걸치고 있고.”

 

 동원은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아이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아 맞다. 떡 좋아해? 줄까?”

 

 동원은 그러더니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져 떡을 꺼내 아이 앞에 내밀었다. 그것은 아이 조막만한 크기의 무지개떡이었다. 아이는 무지개떡과 동원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제 보니 아이의 눈이 보통 초롱초롱한 것이 아니었다. 동원은 방긋 웃어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낯을 가리는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며 두 손으로 떡을 슬그머니 받아 들었다. 동원은 아이를 달래듯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오후 내내 아무것도 못 먹었지? 우선 이거라도 먹고 있자. 그럼 나중에 오빠가 더 맛있는 거 갖다 줄게. 알았지?”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를 데리고 자판기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동원은 자판기에 돈을 넣으며 아이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이름을 안 물어 봤네? 꼬마 아가씨 이름은 뭐야? 몇 살?”

 

 그때 동원의 휴대폰에서 문자 수신음이 울렸다. 동원은 승희에게서 온 것인가 싶어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하지만 도착한 문자메시지에는 발신인 번호가 없었다.

 

 “뭐야, 이 야밤에도 스팸이야? 짜증나게 …….”

 

 그래도 혹시 몰라 문자 내용을 확인해봤다.

 

 

  - 꽃님 8살

 

 

 동원은 아이를 쳐다봤다.

 

 “이거 니가 보낸 거야?”

 

 그러나 아이는 동원을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너 혹시 …… 말을 할 줄 모르는 건 아니지?”

 

 하지만 꽃님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하긴 합창단인데 말을 못할 리가 없겠지. 낯을 가리나보다.’

 

 그리 생각하니 동원은 괜히 꽃님이 더 측은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꽃님에게 힘도 북돋아 줄 겸 뜬금없이 자기소개를 했다.

 

 “하하, 녀석. 8살인데 안 울고 아주 씩씩하네? 오빠 이름은 강동원이야. 잘 부탁해.”

 

 그러자 꽃님은 비로소 배시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게 보였던지 동원은 저도 모르게 눈가로 싱긋이 눈웃음이 번졌다.

 

 “어이구, 웃으니까 더 예쁘네?”

 

 그 순간 동원을 바라보는 꽃님의 눈동자가 커지면서 중심에서부터 휘둥그렇게 파문이 일었다. 그와 동시에 동원의 모습 위로 500년 전 강 내관이 부용지(芙蓉池)에서 자신을 보고 이야기하던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 어이구, 웃으니까 더 예쁘네?

 

 

 그런데 동원과 강 내관의 얼굴이 마치 쌍둥이처럼 똑같았다. 꽃님의 눈망울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가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러는 동안 동원은 꽃님에게 줄만한 음료가 있는지 자판기를 두루 살피고 있었다.

 

 “뭐야, 따뜻한 게 녹차랑 커피 밖에 없잖아? 꽃님인 녹차 같은 건 맛없지? 코코아 같은 게 있으면 좋았을 텐데. 일단 녹차로 몸부터 녹이자. 그럼 오빠가 나중에 더 맛있는 거 사줄게. 꽃님인 착하니까 그럴 수 있지?”

 

 동원은 그러면서 녹차 구입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자판기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당황한 동원은 버튼을 마구 눌러댔다.

 

 “어? 이거 왜 안 나와? 아 씨, 그게 마지막 잔돈이었는데. 야! 나와! 임마!”

 

 동원이 자판기 여기저기를 손으로 때려보기도 하고 발로 차보기도 했지만, 자판기는 끝내 반응이 없었다. 동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꽃님에게 말했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대신 오빠랑 이 오렌지 주스 나눠 마실까? 그래도 되지?”

 

 그런데 꽃님은 대답 대신 조용히 자판기 앞으로 다가섰다. 그러고는 자판기를 지그시 올려다보는 듯하다 그 가운데에다 손을 가만히 짚었다. 그러자 곧 안에서 ‘도르르 쿵’ 하며 음료 캔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원은 설마 설마 하며 배출구를 살폈다. 그런데 정말로 녹차 캔이 나와 있었다. 동원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와! 꽃님이 정말 재주가 좋구나? 자, 이거 들고 얼른 위로 가자. 거기 가면 예쁜 언니가 기다리고 있단다.”

 

 동원은 녹차 캔을 꺼내 꽃님에게 건네주었다. 꽃님은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아들고는 무지개떡과 함께 품으로 꼭 끌어안았다. 둘은 마치 다정한 오누이처럼 나란히 서서 승희와 승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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