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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생각시의 살인교사
작가 : 기쁨을아는몸
작품등록일 :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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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생각시의 살인교사 (1) - ①
작성일 : 17-11-08     조회 : 61     추천 : 0     분량 : 5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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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2016년 12월 30일, 23:52

 

 

 10. 생각시의 살인교사 (1) - ①

 

 

 동원의 눈이 번쩍 떠졌다. 동원은 막혔던 숨이 뚫리자마자 곧바로 연신 기침을 해댔다.

 

 “코올록, 콜록, 케엑! 으으으으……”

 

 승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정신이 들어? 오빠?”

 

 하지만 동원의 시야는 여전히 흐릿했고 소리도 아직은 아득하게 멀었다. 뭔가 이상한 꿈을 꾼 것도 같았지만, 정확히 기억도 안 나는 데다 애써 기억할 필요도 없는 그저 그런 꿈이란 생각에 자연스럽게 의식의 저편으로 멀어져갔다. 동원은 눈을 계속 끔뻑거리며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아, 죽을 뻔 했네.”

 

 동원의 그 첫 마디에 승희는 울음을 터트리며 동원을 와락 끌어안았다.

 

 “으앙! 오빠가 어떻게 돼 버리는 줄 알았단 말야!”

 

 동원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목을 끌어안고 흐느끼고 있는 승희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승희야, 오빠 너 때문에 또 숨 막히겠다.”

 

 승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동원을 짐짓 흘겨보며 타박했다.

 

 “오빠는 이럴 때 농담이 나와?”

 

 승희는 여전히 훌쩍 거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웃는 얼굴이었다. 승호가 물었다.

 

 “어때? 움직일 수 있겠어? 다른 이상한 덴 없고?”

 

 “어, 그냥 가슴이 좀 뻐근한 것 빼곤 괜찮아.”

 

 “그래도 일단 병원에 가보자.”

 

 그러자 동원은 보란 듯이 주먹으로 가슴을 팡팡 두드려보였다.

 

 “에이, 번거롭게 왜 그래? 이것 봐, 괜찮잖 …… 윽! …….”

 

 그러다 별안간 통증을 느끼고는 가슴팍을 움켜잡았다. 그러더니 잠시 후 통증이 좀 가라앉자 고개를 들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순간 마음을 졸였던 승호는 그 모습에 한숨을 돌리면서 피식 했다.

 

 “이 자식, 허풍 떨어대는 거 보니 아직 죽지는 않겠네.”

 

 내심 이러다 송장 치우는 건 아닌지 걱정하며 몰려들었던 다른 이들도 그제야 안도하며 제각기 흩어졌다. 그러나 학현만은 예외였다. 계속 얼빠진 사람 같은 모습을 해 가지고 무리에서 어정쩡하게 밀려나와 있던 학현은 사람들 틈으로 슬그머니 사라졌다. 동원은 그런 학현의 뒷모습이 얼핏 눈에 띄었지만, 구태여 아는 척을 할 필요가 있겠나 싶어 그냥 모른 체 했다. 그러다 문득 승희 옆에 꽃님이 없는 걸 발견했다.

 

 “어? 꽃님이는?”

 

 “응?”

 

 승희는 아차 싶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꽃님이 있던 쪽을 살폈다. 하지만 꽃님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꽃님이 서 있던 자리엔 동원이 걸쳐줬던 재킷과 녹차 캔만이 덩그러니 바닥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가슴이 철렁한 승희는 허겁지겁 꽃님을 부르며 달려갔다.

 

 “꽃님아! 어디 있니? 꽃님아!”

 

 동원과 승호도 승희를 따라 달려갔다.

 

 “꽃님아!”

 

 “꽃님아! 어디 있어?”

 

 그러나 아무리 불러 봐도 꽃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승희는 울상이 되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떡해. 나 때문이야. 내가 또 잃어 버렸어.”

 

 하지만 동원도 자기가 쓰러져있던 동안에 생긴 일이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울지 마. 분명 근처에 있을 거야. 여긴 갈 데가 뻔하잖아. 같이 더 찾아보자, 응?”

 

 동원의 말에 승희는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다.

 

 “그렇겠지?”

 

 승희는 그러면서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난데없이 로텐더 홀 구석에 있던 커다란 괘종시계에서 종이 울렸다.

 

 뎅! 뎅! 뎅! 뎅! …….

 

 사람들은 동원의 기절과 꽃님의 실종 등 연이은 소동에 정신이 팔려 있던 터라 갑작스런 종소리에 누구하나 흠칫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승희도 깜짝 놀란 나머지 다시 다리에서 힘이 풀리면서 또 픽 주저앉고 말았다.

 

 종소리는 뭔가에 쫓기듯 약간은 급한 느낌으로 정확히 12번을 울린 다음 뚝 멈췄다.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사람들은 그제야 ‘뭐야, 그냥 시계소리였잖아?’라는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저마다 안도했다.

 

 그런데 승희는 별안간 바닥으로부터 이상한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불길한 예감에 바닥으로 천천히 눈을 내리깔던 승희는 일순간 아주 질겁을 하며 앉은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곧장 동원의 팔에 매달리면서 비명을 질렀다.

 

 “꺅! 오빠! 오빠!”

 

 이어 발을 동동 구르며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밑! 밑!”

 

 동원은 바닥을 쳐다봤다. 대리석 바닥이 아까 예배당에서 봤던 것처럼 검붉은 핏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식겁한 동원은 얼른 다른 곳도 살폈다. 바닥이 마치 피로 가득 채워진 커다란 드럼통을 엎어 놓은 것처럼 복도 끝에서부터 로텐더 홀 중앙 방향으로 온통 검붉게 변해가고 있었다.

 

 동원은 문득 예배당에서 ‘피를 토하는 꽃님’을 봤던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얼른 주변을 다시 한 번 살폈다. 하지만 그와 같은 꽃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반대편 복도에서 남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으아아아! 우린 다 죽을 거야! 으아아아! …….”

 

 조금 전 꽃님을 보고 기겁하며 도망쳤던 민철이었다. 그는 뭔가에 쫓기듯 비명을 지르며 로텐더 홀 중앙 방향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그 바람에 홀에 있던 사람들의 눈엔 마치 민철이 그 검붉은 피 같은 것을 자신들 쪽으로 몰고 오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 기겁한 이들은 민철을 피해 홀 중앙 방향으로 달아나거나, 아니면 그 검붉은 변화가 자신의 발밑을 통과할 때마다 비명을 지르며 연신 까치발을 세워댔다.

 

 마침내 ‘7충 꼭대기의 돔 천장이 올려다 보이는 홀 정 중앙의 원형의 영역’을 제외한 건물 안 바닥 전체가 검붉게 변해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변화는 그 시점에서 딱 멈췄다. 그리고 그 즈음이 돼서야 사람들은 늪처럼 바닥 속으로 빠져들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바닥을 발끝으로 찧어보기도 하고 조심스럽게 손을 대보기도 하면서 서로 웅성거렸다. 개중에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홀 중앙의 영역으로 슬그머니 도망쳐 들어가는 이들도 있었다. 그때 홀 남쪽에 있는 2층 현관에서 실랑이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뭡니까? 경찰은 안으로 못 들어와요!”

 

 그곳에선 의사당을 에워싼 채 경계를 서고 있던 전경대의 책임자인 경감이 현관 경비를 맡고 있던 국회 방호원 2명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지금 비상이란 말 안 들려? 우린 여기 갇혔어! 당장 의장님을 봬야 한다고!”

 

 “비상이고 뭐고 경호 경력은 안으로 못 들어오는 거 몰라요?”*

 

 갇혔다니? 사람들은 방금 전 건물의 기이한 변화를 겪은 터라 ‘갇혔다’는 그 말이 그냥 넘겨지지가 않았다.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한 몇몇이 상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겠다며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한편 방호원들은 그 와중에도 여전히 전경대에게 길을 터주지 않고 있었다. 그들의 완강한 태도에 답답함을 참지 못한 경감은 결국 버럭 짜증을 내며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야! 이 새끼들 당장 끌어내! 그리고 박 경위, 넌 소대 애들 데리고 따라와!”

 

 경감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그의 뒤에 있던 전경들이 곧바로 방호원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방호원들을 제압하고 옆으로 끌어냈다. 방호원들은 발버둥 치며 저항했다.

 

 “야! 이거 안 놔?”

 

 하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경감은 소대를 앞세우고 계단을 통해 로텐더 홀로 향했다. 사람들은 쭈뼛쭈뼛 옆으로 물러나며 전경들에게 길을 터주었다. 전례 없는 전경대의 국회 난입에 모두들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그때 좀 전에 밖으로 뛰쳐나갔던 사람들 중 일부가 헐레벌떡 돌아와 소리쳤다.

 

 “정말이에요! 우리 갇혔어요!”

 

 “뭐?”

 

 홀이 대번에 술렁였다. 전경대 경감이 얘기했을 때만 해도 대부분 ‘설마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애써 믿지 않으려는 분위기였지만, 자신과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이 똑같은 사실을 재차 확인해오자 모두들 의심 없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사람들의 휴대폰에서 일제히 같은 멜로디의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느리게 퍼지는 그 멜로디는 비단실처럼 가늘었지만 또 한편으론 선명했다. 벨소리는 유리가루를 갈아 풀을 먹인 연실이 손가락에 생채기를 내듯 사람들의 가슴을 마구 비벼댔다. 모두들 휴대폰을 꺼내 쳐다보고 있으면서도, 누구하나 선뜻 받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개중에는 겁을 집어 먹고서 휴대폰을 바닥에 집어 던지거나 손에서 놓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부서진 휴대폰에서도 벨소리는 그치지 않고 계속 흘러나왔다.

 

 그렇게 반복되는 선율에 사람들이 완전히 넋을 놓고 있던 그때 웬 젊은 여자가 느닷없이 비명을 질렀다.

 

 “꺅!”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로 쏠렸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정체불명의 멜로디도 허공으로 증발하듯 일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한쪽 벽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벌벌 떨었다.

 

 “저, 저기 …….”

 

 벽을 쳐다본 동원은 아연실색했다. 건물 내벽 여기저기가 조금 전 예배당에서 그랬던 것처럼 마치 뜨거운 불길에 타들어가는 피부껍질같이 벗겨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불에 녹은 붉은 색 파라핀 같이 찐득찐득한 액체로 변해 엉겨 붙으면서 벽을 타고 흘러내리거나 천장에 방울져 맺혔다가 비처럼 후드득 떨어졌다.

 

 그것이 피부에 닿는 느낌은 아까 예배당에서와 똑같았다. 그 붉은 액체는 살 위로 떨어질 때마다 온기가 느껴지는 게 마치 사람의 심장에서 막 뿜어져 나온 피 같았다. 정말 피가 맞는 건지 자세히 따져볼 경황은 없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피가 아닌 게 분명하다 하더라도 그 액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섬뜩하고 불길했다. 사람들은 천장에서 떨어지는 그 붉은 물방울들을 피하느라 저마다 손으로 머리를 가린 채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그런데 오직 한 군데, 7층 꼭대기의 돔 천장만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곳은 건물 바닥이 온통 다 검붉게 변하는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본래의 모습을 유지했던 홀 정중앙에서 바로 올려다 보이는 부분이었다. 바닥과 천장 모두 본래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그 원통의 공간은 그 순간 사람들에게 유일하고도 완벽한 피난처처럼 보였다.

 

 거듭된 괴의한 현상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급기야 그곳으로 앞 다퉈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로인해 홀 중앙 일대는 원래 그곳에 있던 사람들과 새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한데 뒤섞여 눈 깜짝 할 사이에 아수라장으로 변하였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돔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걸쭉하고 시뻘건 액체가 마치 핏물이 가득 든 드럼통을 엎어버린 것처럼 그들의 머리 위로 좍 쏟아져 내렸다.

 

 “꺅!”

 

 “으악!”

 

 까무러치는 듯한 비명들이 로텐더 홀을 통째로 뒤흔들었다. 확실한 피난처라 믿었던 장소에서 난데없이 더 끔찍한 봉변을 당하게 된 사람들은 경악하며 마구 비명을 질러댔다. 그 모습은 마치 화형대에 묶인 채 온몸이 불길에 타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위에선 여전히 공중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시뻘건 액체가 좌악좌악 쉴 새 없이 무자비하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들의 비명마저도 삽시간에 집어삼켜버렸다. 그건 사람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그 안에선 몸을 가누기는커녕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웠다. 그리고 그제야 비릿한 피 내음이 사방으로 확 풍겨 나왔다.

 

 결국 그들은 중심을 잃고 휘청대다 바닥에 철퍼덕거리며 미끄러지거나 앞으로 고꾸라졌다. 바닥에 엎어진 뒤에도 계속해 쏟아지는 그 시뻘겋고 걸쭉한 피를 고스란히 맞으면서 버둥거리고 있던 그들의 모습은 흡사 피투성이의 처참한 몰골로 되살아나려 꿈틀대고 있는 시체들 같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얼굴에선 어느 새 핏기마저 싹 가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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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회법은 경찰이 경호 업무와 관련하여서는 국회 안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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