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공포물
[완결] 생각시의 살인교사
작가 : 기쁨을아는몸
작품등록일 :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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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꽃님이 (2) - ④
작성일 : 17-11-07     조회 : 46     추천 : 0     분량 : 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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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꽃님이 (2) - ④

 

 

 “이봐! 너 뭐야? 거기 막아!”

 

 “야 이 새끼들아! 니들이 뭔데 의원이 본회의장 가는 걸 막아?”

 

 “너 따위가 무슨 의원이야?”

 

 통한당 의원들의 본회의장 진입이 시작된 것이었다. 로텐더 홀은 여야의 국회의원들과 보좌직원들, 그리고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와 빛이 한데 뒤엉켜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하였다. 학현과 지혜는 대열의 맨 앞에서 통한당 의원들의 진입을 온몸으로 저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인은 사람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자기 몸도 제대로 못가누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승호는 조바심이 났다.

 

 “야, 지인이 저러다 다치겠다. 안되겠어. 내가 가봐야지.”

 

 그런데 그때 승희가 승호의 팔을 덥석 붙들며 말렸다.

 

 “오빠! 오빤 통한당 의원이라고. 지금 가면 오빠가 싸우러 가는 줄 알고 전부 오빠한테 달려들 거야. 지인 언니는 지혜 언니가 잘 돌봐 줄 거야. 그러니까 오빠는 여기 있어, 응?”

 

 하지만 승호는 그렇게 애원하는 승희의 손을 슬그머니 뿌리쳤다. 그리고 등을 돌려 로텐더 홀로 달려갔다. 그러나 도중에 승희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 나머지, 가다말고 돌아서서 동원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동원아, 승희 좀 부탁할게! 너만 믿는다!”

 

 동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안심이 된 승호는 다시 방향을 앞으로 틀어 난리 통 속으로 뛰어 들었다. 승호는 지인이 있는 난장판의 중심을 향해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장신에 비교적 체격도 좋은 승호였지만, 수백 명이 뒤엉켜 필사적으로 부대끼고 있는 곳에서는 제 몸 하나 가누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게다가 승호는 통한당 의원인 탓에 민평당과 진보당 사람들의 집중 목표가 되고 있었다. 멀리서 발만 동동 구르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승희는 결국 동원에게 사정했다.

 

 “오빠, 우리 오빠 좀 도와주면 안 될까? 저러다 다치겠어. 우리 오빤 요령이 없단 말이야. 작년에도 다쳤었다고. 응?”

 

 동원은 성격상 많은 사람들 틈에서 부대끼는 게 썩 내키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승희의 애원을 무턱대고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어쩔 수 없다 생각한 동원은 승희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문득 꽃님이 마음이 걸렸다. 꽃님은 여전히 순하고 여린 눈망울로 동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원은 꽃님이 지금은 뭔가 불편한 느낌이 드는 아이가 돼버렸지만, 그래도 한 편으로는 길 잃은 아이를 데리고 와서 무책임하게 방치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승희에게 단단히 일렀다.

 

 “얘 잃어버리지 말고 잘 돌보고 있어. 알았지? 이런데서 잃어버리면 다칠지도 모르니까.”

 

 승희는 꽃님의 손을 새삼 꼭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원은 그제야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한 뒤 난장판 속으로 뛰어들었다.

 

 “야! 밀지 마!”

 

 “꺅! 너 지금 어딜 만지는 거야?”

 

 “우리도 여자거든요?”

 

 여자들의 고성도 여기저기서 섞여 나올 정도로 몸싸움의 분위기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동원은 요리 조리 눈치를 살피면서 승호가 있다고 생각되는 쪽으로 파고 들어갔다.

 

 “아 씨! 좀 비켜 봐!”

 

 그러나 곧 승호를 찾아가기는커녕 난리 통에 오히려 방향 감각마저 잃고 말았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동원의 머리를 잡아챘다.

 

 “악! 누구야? 이거 안 놔?”

 

 동원은 버럭 짜증을 내며 그 손을 뿌리쳤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예 사방에서 동원의 옷이며 머리를 닥치는 대로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결국 동원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냈다.

 

 “아, 씨팔!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고!”

 

 동원은 그 동안 붙들렸던 것에 대해 복수라도 하듯 마구 팔을 뻗으며 손에 잡히는 대로 사람들을 밀치고 잡아 당겼다. 그러는 사이 승호와 지인에 대한 생각은 어느 새 머릿속에서 서서히 잊혀져갔다. 그러다 동원이 누군가의 뒷덜미를 낚아챘을 때였다.

 

 “아! 씨팔, 어떤 새끼야?”

 

 상대의 목소리가 낯익었다. 불길했다. 동원에게 뒷덜미를 낚아 채인 남자가 뒤를 돌아봤다. 역시나 학현이었다. 동원은 아차 싶었지만 후회해본들 이미 늦은 일이었다. 학현은 곧장 동원의 멱살을 자기 쪽으로 확 잡아챘다.

 

 “야! 너 정말 많이 컸구나?”

 

 학현은 가소롭다는 표정, 딱 그 표정이었다. 동원은 찔끔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

 

 “야 이 자식아! 내가 아까 뭐랬어? 여기서 내 눈에 띄면 죽는다 그랬지?”

 

 학현은 그러면서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눈빛이 맹수같이 번득였다. 동원은 덜컥 겁이 났다. 그때 멀리서 그 광경을 목격한 승희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학현 오빠 그러지마!”

 

 승희의 날카로운 외침이 학현의 귓전을 때렸다. 학현은 승희가 이번에도 필사적으로 동원의 편을 드는 것에 울컥 부아가 치밀었다. 이에 엉겁결에 휘두른 주먹이 동원의 명치로 날아가 꽂혔다. 동원은 명치로부터 쳐 올라온 날숨에 숨이 턱 막히며 입에서 외마디 신음소리가 튀어나왔다.

 

 “헉!…….”

 

 눈동자가 어지럽게 흔들리며 동공이 활짝 열렸다. 주변의 소란이 의식으로부터 점점 아득해져 갔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주변 전경이 동원을 중심으로 한 바퀴 홱 회전하는 것 같던 느낌이 드는 순간, 동원은 이내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학현의 품으로 안기듯 쓰러져 버렸다.

 

 “꺅! 오빠!”

 

 승희의 날카로운 비명이 홀 전체를 뒤흔들었다. 몸싸움에 정신이 팔려있던 사람들은 순간 멈칫하며 승희 쪽을 돌아봤다. 승호, 지인, 지혜도 마찬가지였다. 승희는 동원을 부르며 홀 중앙으로 달려 나왔다.

 

 “오빠!”

 

 사람들은 마치 모세가 바다를 가르듯 양쪽으로 차례로 물러나며 승희에게 길을 터주었다. 그와 동시에 기자들이 동원과 승희 주위로 몰려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학현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애초에 힘을 다해 때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겁만 줄 생각이었는데……, 일이 갑자기 커져버린 것 같아 덜컥 겁이 났다. 동원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에서 스르륵 힘이 빠져나갔다. 그 바람에 축 늘어져 있던 동원의 몸이 학현의 몸을 타고 내려와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그러나 학현은 얼빠진 얼굴이 되어 속수무책으로 동원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승희는 허겁지겁 동원을 끌어안으며 다급하게 불렀다.

 

 “오빠! 오빠! 정신 차려봐! 오빠! …… 숨은 쉬는 거야?”

 

 승희가 아무리 흔들고 뺨을 때려도 동원은 일어날 줄을 몰랐다. 조바심이 난 승희는 자신의 뺨을 동원의 코로 가져갔다. 하지만 숨결이 느껴지질 않았다. 뒤이어 승호와 지인, 지혜도 승희 곁으로 달려왔다. 승희는 승호를 쳐다보며 울먹였다.

 

 “오빠, 숨을 안 쉬어. 어떡해.”

 

 그러다 돌연 학현 쪽을 돌아보며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살려 내! 살려내란 말이야!”

 

 넋을 놓은 채 어정쩡하게 서있던 학현은 순간 움찔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승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때 승호가 나섰다.

 

 “승희야, 심폐소생술! 서둘러!”

 

 승희는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동원을 바닥에 똑바로 눕혔다. 승호는 동원의 옆에 앉아 가슴을 압박하며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 승호가 20여 차례 동원의 흉부를 압박했지만 동원은 반응이 없다. 긴장한 승호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오빠, 꼭 깨어나야 해.”

 

 승희가 그렇게 말하면서 동원의 입에다 숨을 훅 불어 넣는다. 승호가 다시 흉부를 압박한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기자들이 터트리는 카메라 셔터 소리와 빛이 점점 더 요란해져 간다. 마치 시간마저 점점 느려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꽃님은 멀리서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때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던 동원의 뇌리에서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동원이 그곳에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치 그곳에 있는 것처럼 장면들이 생생하다. 그것들은 슬라이드처럼 이어진다.

 

 

  - 달도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 천지에 돌풍이 거세고 벼락과 천둥이 요란하다. 어느 산기슭에서 하얀 가면을 쓴 무당이 방울을 요란스럽게 흔들며 주문을 외고 있다.

 

  - 허리에 칼을 찬 내시들이 불에 달궈진 인두와 기름으로 나인들의 눈과 귀를 지지고, 쇠집게로 꽃님의 혀를 잘라 버린다. 11개의 날카로운 비명들이 밤하늘을 갈가리 찢어 놓는다.

 

  - 동원과 똑같은 얼굴을 한 내시가 칼을 맞고 피투성이가 된 채, 새하얀 가면을 쓴 무당의 시체와 함께 허리에 칼을 찬 내시들의 손에 다리가 붙들려 질질 끌려간다.

 

 

 그 순간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던 동원의 몸이 움찔한다.

 

 

  - 무당이 쓰고 있던 가면이 흙바닥에 걸려 벗겨진다. 가면 속에서 동원과 쌍둥이처럼 닮은 얼굴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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