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공포물
[완결] 생각시의 살인교사
작가 : 기쁨을아는몸
작품등록일 : 2017.10.30
  첫회보기
 
[대한민국] 꽃님이 (2) - ①
작성일 : 17-11-04     조회 : 31     추천 : 0     분량 : 7755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 대한민국, 2016년 12월 30일, 23:01

 

 

 6. 꽃님이 (2) - ①

 

 

 사내는 인적이 없는 복도를 혼자 걸어가고 있었다. 천장 양옆으로 형광등이 줄줄이 매달려있었지만, 등이 수명을 다한 것인지 아니면 절전의 목적 때문인 것인지 불이 들어온 것은 전체의 반의반도 되지 않았다. 더욱이 그 중 몇 개는 곧 수명을 다할 것처럼 형광등 특유의 소리까지 내며 지직거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안 그래도 어스름한 복도의 분위기가 괜스레 더 을씨년스러워졌다.

 

 사내가 도착한 곳은 ‘국회 직원 예배당’이라는 팻말이 붙은 문 앞이었다. 사내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문에 가만히 귀를 가져다댔다. 안에는 아무도 없는 듯 했다. 이윽고 문의 손잡이를 잡고 조심스럽게 돌렸다.

 

 딸깍.

 

 사내는 괜히 주변을 한 번 더 살폈다. 그러고 난 뒤 문을 슬며시 밀었다. 그러자 오래되어 헐거워진 경첩에서 난 소리가 마치 가지를 치며 뻗어나가듯 복도 전체로 퍼져나갔다.

 

 끼이익!

 

 예배당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또 어스름했다. 열린 문틈으로 복도의 조명 빛이 햇살처럼 예배당 안으로 새어 들어갔다. 다시 한 번 예배당 안팎을 살핀 사내는 지나가는 사람에게라도 들킬세라 얼른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예배당 정면의 낮은 천장엔 작은 형광등이 하나 달려 있었다. 그 빛은 마치 성광(聖光)처럼 바로 아래의 단상을 내리 비추고 있었다. 사내는 단상으로 향하는 내내 연신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단상 앞에 도착한 사내는 설교대를 옆으로 밀어서 치웠다. 그리고 재킷 안주머니에서 노란 봉투를 꺼냈다. 거기엔 기이한 문양이 그려진 부적이 들어 있었다. 사내는 그 부적을 설교대가 있었던 바닥에 조심스럽게 붙였다.

 

 그런 다음 다시 품 안에서 자주색의 작은 주술용 단도(短刀)를 꺼내들었다. 그러더니 망설임 없이 칼집에서 칼을 뽑아 왼 손으로 날을 움켜잡은 뒤 단숨에 손바닥을 쓱 그었다. 벌어진 상처 사이로 피가 스며 나와 순식간에 손바닥 전체를 뒤덮었다. 그러나 사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뭔가 요상한 주문 같은 걸 외며 부적에다 피를 주르륵 뚝뚝 떨어뜨렸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피가 부적 안으로 흡수돼버리듯 이내 사라져버렸다. 작업을 끝낸 사내는 다시 그것들이 보이지 않도록 설교대를 원래의 자리로 가져다 놓았다.

 

 이어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온 주술용 방울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설교대 앞에 자리를 잡고 서서, 두 눈을 감고 그것을 요란스럽게 흔들어대며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감고 있던 눈꺼풀과 목소리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미간과 입가에도 주름이 잔뜩 생겨났다.

 

 숨 한번 고르지 않고 계속되던 기도와 방울 소리는 예배당 내의 빛과 어둠과 뒤섞여 그곳의 공기를 교수대의 밧줄처럼 옥죄어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예배당 안의 모든 집기와 가구들이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요란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내의 방울 소리와 기도 소리가 커지면 집기와 가구들의 떨림도 더욱 심해졌고, 반대로 그 소리가 다시 작아지면 그 떨림도 따라서 잦아들었다.

 

 그렇게 계속되던 기도에 숨이 목구멍까지 턱 차오르는가 싶던 순간, 사내의 눈알이 갑자기 흰자위를 드러내며 홱 뒤집혔다. 그러고는 이내 고압선에 감전된 사람처럼 통나무가 넘어가듯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사내의 입에서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뻣뻣하게 굳어져버린 사지가 경련하며 볼썽사납게 마구 뒤틀려갔다.

 

 

 - § -

 

 

 여의도 국회의사당.

 

 건물을 치장하고 있는 조명들이 오늘도 어김없이 화려하다. 한 밤에 한강으로부터 불어오는 12월의 강바람이 여전히 매섭다. 완전무장한 수백 명의 전투 경찰들이 의사당을 철통같이 에워싸고 있다. 그 모습은 얼핏 당당해 보이지만 한편으론 어딘지 처량해 보이기도 하다.

 

 자정을 기해 대통령 탄핵안이 기습 처리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의사당 3층 중앙의 로텐더 홀(국회 본회의장 출입문 앞의 넓은 홀)에는 족히 300명은 넘어 보이는 민주평화당(여당)과 혁신진보당(친여 야당)의 국회의원들·보좌직원들이 연좌해있다. 그들은 ‘탄핵 결사반대!’, ‘탄핵은 쿠데타다!’, ‘국가 전복 막아내자!’ 등 각양각색의 아이디어 넘치는 피켓들을 흔들어대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그 맞은편에는 통일한국당(야당)의 보좌 직원들과 국정원 연락관, 경찰청 정보과 직원들이 자기들끼리 모여 주변을 힐끔 거리며 수군대거나 메모를 하고 있다.

 

 또 홀 곳곳에서는 기자들 수십 명이 기사 거리가 될 만한 돌발 상황이 발생하길 기다리면서 취재 준비에 열심이다. 홀의 남쪽으로 난 계단을 타고 한층을 내려가면 있는 중앙 현관에서는, 국회 방호원들이 사람들의 신분증을 일일이 확인하며 의사당 출입을 엄하게 통제하고 있다.

 

 로텐더 홀에 북쪽으로 접해 있는 카페의 로비.

 

 동원은 문득 어디에선가 희미한 방울 소리가 나는 것 같은 느낌에 주변을 돌아봤다. 승희는 그런 동원을 이상하게 여기며 물었다.

 

 “오빠? 왜 그래?”

 

 “어? 아니 그게 …… 어디서 방울 소리 같은 거 못 들었어?”

 

 “방울 소리? 아니, 난 못 들었는데?”

 

 그러자 옆에 있던 승호가 핀잔을 줬다.

 

 “야, 너 겨우 집에 며칠 못 들어갔다고 이제 환청까지 들리는 거냐?”

 

 동원은 승희, 승호 둘 다 못 들었다고 하니 왠지 멋쩍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괜스레 구시렁거렸다.

 

 “형이 퇴근을 안 시켜주니까 그런 거잖아.”

 

 “야, 내가 안 시켜주는 거냐? 못 시켜주는 거지.”

 

 동원은 괜히 짜증이 났다.

 

 “아아, 몰라 몰라.”

 

 그러면서 고개를 돌리자 로텐더 홀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카페 로비는 로텐더 홀보다 세 계단 위에 있었기 때문에 홀의 상황이 훤히 내려다 보였다. 동원은 턱으로 홀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무리 우리 당이 벌인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탄핵은 좀 심한 것 같지 않아?”

 

 승호도 같은 생각이었다.

 

 “누가 아니래냐? 말실수 한번 했다고 꼬투리 잡아서 탄핵이면 지난 50년 동안 대통령했던 사람들은 죄다 탄핵당하다 임기 끝났을 거다.”

 

 “우리 당 의원들 중에서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던데?”

 

 “지금 찬성, 반대가 중요하냐?”

 

 승희는 승호의 말이 언뜻 이해가 안됐다.

 

 “그럼 뭐가 중요한데?”

 

 “탄핵안이 통과되든 부결되든 우리 당이 역풍을 맞는다는 게 중요하지. 그렇게 되면 조만간 있을 총선에서 우리 당은 끝장나는 거라고.”

 

 승희는 낙선이란 말에 불쑥 걱정이 앞섰다.

 

 “오빠, 그래서 오빤 반대하려고?”

 

 그러자 동원이 끼어들었다.

 

 “섣불리 반대했다간 아예 당에서 공천조차 안 해줄 걸?”

 

 동원의 말에 승희의 표정은 방금 전보다 더 심각해졌다.

 

 “그럼 오빠 어떡해?”

 

 승호는 걱정하는 승희의 얼굴을 보니 속이 더 답답해졌다.

 

 “에휴, 난들 아냐? 에이, 그냥 국회에 불이나 확 나버려라!”

 

 그러자 깜짝 놀란 승희가 승호의 입을 손으로 냉큼 막으며 속닥였다.

 

 “오빠! 딴 사람들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승호도 아차 싶었다. 주변에 좍 깔려 있는 기자들한테 괜히 트집잡혔다가는 설화(舌禍)에 휘말려 곤욕을 치룰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승호는 슬며시 승희의 손을 입에서 떼어내며 멋쩍게 웃었다.

 

 “내 목소리가 그렇게 컸나?”

 

 승희는 승호를 흘겨보며 타박했다.

 

 “컸어.”

 

 머쓱해진 승호는 딴청을 피우는 척 하면서 로텐더 홀 쪽을 힐끔거렸다. 그러다 연좌 농성 중인 사람들 무리에서 지인이 제일 앞줄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 저기 지인이 있다. …… 아 씨, 근데 하필이면 학현이 저 자식 옆에 있을 건 또 뭐야? 아아, 지혜까지 옆에 있네?”

 

 승호의 인상이 절로 구겨졌다. 하지만 그래도 자기가 명색이 지인의 애인인데 보고도 안 가볼 순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지인도 승호를 발견했다. 승호와 학현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던 지인은 자기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승호에게로 왔다. 승호는 지인이 오자마자 손을 덥석 감싸 쥐고는 유난을 떨었다.

 

 “안 추워? 바닥이 많이 찰 텐데. 내가 담요라도 구해다 줄까?”

 

 지인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담요는 이미 하나 깔아놨어. 그리고 여긴 난방도 제법 잘되잖아.”

 

 그래도 걱정이 된 승호는 지인의 손과 뺨을 연거푸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래도 여자가 찬 곳에 오래 앉아 있으면 안 좋을 텐데 …….”

 

 동원과 승희는 그런 승호가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보다 못한 동원이 승호에게 핀잔을 줬다.

 

 “누가 누구 손을 덥히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네. 걱정하는 척 하면서 사심 챙기지 맙시다.”

 

 그러자 지인은 이내 얼굴을 붉히며 승호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슬며시 빼냈다. 무안해진 승호도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피웠다. 그때 마침 동원의 왼쪽 손바닥에 못 보던 흉터 자국이 있는 게 지인의 눈에 띄었다.

 

 “동원 씨, 손바닥에 그거 흉터 아니에요? 언제 다친 거예요?”

 

 동원은 화들짝 놀라며 주먹을 쥐어 흉터를 감췄다.

 

 “네? 아, 그게 …….”

 

 그때 승희가 불쑥 앞으로 나서며 대신 말했다.

 

 “이거요, 얼마 전에 사과 깎다가 그런 거예요. 글쎄 아무리 남자라지만 이 나이 되도록 사과 하나 깎을 줄 모른다는 게 말이 돼요?”

 

 승희의 느닷없는 폭로에 동원은 얼굴이 빨개졌다.

 

 “아, 아니야. 이건 실수로 베인 것뿐이라고.”

 

 그러자 승희는 동원을 장난스럽게 째려보며 비꼬았다.

 

 “뭐? 실수? 그럼 사과를 깍둑썰기로 깎은 것도 실수야?”

 

 승희의 거침없는 공격에 할 말이 없어진 동원은 결국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피웠다.

 

 “그, 그게 …… 어흠흠 …….”

 

 그 모습을 본 모두는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돌연 무엇을 봤는지 동원, 승희, 승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그 바람에 어리둥절해진 지인의 얼굴에서도 덩달아 웃음이 사라졌다. 지인은 세 사람의 시선이 자신의 어깨너머를 향하고 있음을 눈치 채고는 이상히 여기며 뒤를 돌아봤다. 어느 새 학현과 지혜가 와 있었다. 학현은 자신과 눈이 마주치는 족족 네 사람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차례로 가셔가자 내심 못마땅해져서 빈정거렸다.

 

 “흥, 로미오와 줄리엣이 따로 없구만? 양쪽 집안은 철천지원수가 돼서 싸우고 있는데 그 집 자식들은 아주 재미가 좋으셔?”

 

 네 사람을 훑어가던 학현의 시선이 돌연 승희에게서 멈췄다. 학현과 눈이 마주친 승희는 흠칫 놀라며 재빨리 동원의 등 뒤로 숨어들었다. 못마땅해진 학현은 눈을 빗뜨며 동원을 째려봤다. 찔끔한 동원은 학현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보다 못한 승호가 끼어들었다.

 

 “왔냐?”

 

 그러나 학현은 대답 대신 승호를 돌아보기만 했다. 둘 사이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한편 지혜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지인의 손을 잡아끌었다.

 

 “언니, 가자. 지금은 여기 있으면 안 돼.”

 

 “응? 응 …….”

 

 승호의 눈치를 보며 꾸물대던 지인은 결국 마지못해 지혜의 손에 이끌려갔다. 승호는 떨떠름했지만 동생이 제 언니를 데리고 가는 데야 별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학현은 뭔가 발견한 표정으로 지인과 승희를 번갈아 보더니 다시 빈정거렸다.

 

 “어? 승희도 흰색 원피스네? 누가 보면 지인 씨가 지혜 씨 말고 승희하고 쌍둥이 자매인 줄 알겠다, 야아 …….”

 

 그러자 승희는 학현의 시선을 피해 동원의 등 뒤로 더 바짝 숨어들었다. 학현은 승희가 자신을 계속 무슨 뱀 보듯 하자 괜스레 심사가 뒤틀렸다.

 

 “승희야, 오빠 너 안 잡아먹는다.”

 

 학현은 그러면서 승희 쪽으로 손을 뻗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승희는 되레 화들짝 놀라며 더 움츠러들었다. 보다 못한 동원이 학현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이제 그만 놀려요. 승희가 싫어하잖아요.”

 

 학현은 어이가 없어 절로 콧방귀가 나왔다.

 

 “흥, 꼴에 남자라고 지금 여자 앞에서 허세 부리는 거냐? 맨날 고자새끼마냥 찌질거리던 놈이 이 남학현에게 따박따박 말대꾸까지 하고. 야 유승호, 니가 이 자식 거둬가더니 이렇게 만든 거냐?”

 

 학현은 그러면서 눈알을 굴려 승호를 삐딱하게 쳐다봤다. 승호의 표정이 일순 굳어졌다. 그런데 학현은 그런 승호에게 씩 한번 웃어 보이는가 싶더니, 다시 눈 깜짝할 사이에 동원에게 와락 달려들며 멱살을 틀어쥐었다.

 

 “야 이 자식아! 승호가 허세 잘못 부리면 어떻게 되는지는 안 가르쳐주던?”

 

 승희는 동원이 잘못되기라도 할까봐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다짜고짜 학현의 팔에 매달리며 소리쳤다.

 

 “오빠! 왜 이래요? 이거 놓고 얘기해요!”

 

 하지만 동원 편을 드는 승희의 태도에 학현은 도리어 울화가 더 치밀었다. 그래서 곧바로 승희를 밀쳐내며 소리쳤다.

 

 “니가 상관할 바 아냐! 저리 비켜!”

 

 “꺅!”

 

 승희는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그러나 다행히도 옆에 있던 승호가 재빨리 붙든 덕에 넘어지진 않았다. 승희를 부축해 일으켜 세운 승호는 학현에게 다가가 동원의 멱살을 움켜쥐고 있던 쪽의 손목을 붙잡으며 말했다.

 

 “야, 남학현. 그 정도로 해둬. 지금 대치중이잖아. 이러다 큰 싸움으로 번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

 

 하지만 학현은 못들은 척 꿈쩍도 하지 않은 채 계속 동원만 노려봤다. 그때였다. 갑자기 한 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대며 능청스럽게 끼어들었다.

 

 “이게 무슨 재미난 일들이십니까? 어라, 유승호 의원님도 계시네?”

 

 예상치 못한 사내의 등장에 여섯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쏠렸다. 그런데 그는 사람들 틈에서 지혜를 발견하곤 아는 척을 했다.

 

 “어? 지혜야, 너도 있었네?”

 

 “재필씨, 이거 별거 아니야. 개인적인 일이니까 찍을 필요 없어.”

 

 “뭐? 그럼 이거 진짜 삼각관계라도 되는 거야? 야, 그럼 더 특종인데? 여야 대치를 틈타 발생한 보좌진 간의 사랑싸움이라…….”

 

 재필은 그렇게 너스레를 떨며 방금 전 상황에 한층 더 호기심을 보였다. 한편 재필의 등장에 그만 김이 새버린 학현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동원의 멱살을 풀었다. 동원은 그제야 인상을 쓰며 목을 만지작거렸다. 학현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매만지며 동원에게 경고했다.

 

 “야, 너 운 좋은 줄 알아라. 그리고 이따 몸싸움 할 땐 내 눈에 띄지 마. 그럼 죽여 버릴 테니까. 알았어?”

 

 그러더니 홱 돌아서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이를 본 재필은 지혜를 보고 수군거렸다.

 

 “저 사람이 민평당 대표실의 남학현 보좌관 맞지? 이햐, 소문대로 정말 찬 바람이 쌩쌩 부네.”

 

 그러다 문득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려 있음을 깨달았다.

 

 “아, 제 소개를 안했군요.”

 

 그러고는 깜박했다는 듯이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나누어주며 넉살 좋게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대한일보의 송재필 기자라고 합니다. 어쩌다 보니 지혜완 몇 달 전부터 사귀는 사이가 됐어요.”

 

 네 사람은 그제야 상황이 이해가 됐다. 친언니인 지인도 처음 듣는 얘기였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지혜는 기다렸다는 듯이 재필에게 말했다

 

 “어차피 그 사람들하곤 더 얘기해봐야 영양가도 없을 거야. 그럼 우린 이만 가볼 테니까 일 끝나고 봐.”

 

 그러더니 곧장 지인의 손을 잡아끌고 학현이 있는 쪽으로 가버렸다. 지인은 가면서 몇 번이나 승호를 돌아봤다. 승호는 그때마다 걱정 말라는 뜻으로 손짓을 해주었다. 지인과 지혜가 원래 자리로 돌아가자, 재필도 간단히 눈인사를 한 뒤 제 자리로 돌아갔다.

 

 동원, 승희, 승호. 남겨진 세 사람 사이엔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동원은 학현과 지혜 때문에 가라앉아버린 분위기를 얼른 바꾸고 싶었다. 그때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오른 동원은 재킷 주머니에서 비닐랩으로 개별 포장된 떡들을 몇 개 꺼내 보였다.

 

 “짜잔! 배 안 고파? 떡 좀 가져왔는데.”

 

 “어? 오빠 웬 떡이야?”

 

 “아까 낮에 의원회관 로비에서 전통문화 행사 어쩌구 하면서 떡 전시회도 같이 했었잖아. 그때 떡도 나눠주길래 밤을 대비해서 좀 챙겨뒀었지. 자 들 받으시죠.”

 

 동원은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떡을 계속 꺼냈다. 승호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야, 너 떡을 받아 온 거냐, 아니면 몰래 훔쳐온 거냐? 뭐가 이렇게 많아?”

 

 “아, 형. 또 있으니까 말만 해. 더 줄까?”

 

 동원의 너스레에 승희가 킥킥 웃었다.

 

 “어쩐지 아까부터 주머니마다 볼록하더라니.”

 

 “아, 자판기에서 음료수라도 뽑아올까? 뭐 마실래? 콜라? 사이다?”

 

 “난 콜라.”

 

 “난 오렌지 주스. 100%인 건 알고 있지?”

 

 “옙, 알겠습니다. 일단 이것들 드시면서 기다리십쇼. 제가 얼른 뽑아 대령하겠습니다.”

 

 한껏 과장된 몸짓으로 그렇게 한차례 넉살을 떤 동원은 곧장 자판기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맨위로맨아래로
 
 1  2